북극해 해빙이 세계 물류축의 대변동을 가져올 것이 확실해 지면서 각국의 연구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은 우리나라 극지 조사선 아라온호의 승무원과 연구진들이 지난 겨울 갑판에서 실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극지연구소 제공

- 물동량 등 외적조건의 변화
- 부산항 성격도 바꾸기 마련
- 북극항로 경유지 역할 고려
- 유류공급·선박수리·금융 등
- 종합 항만 경쟁력 갖춰야만
- 진정한 동북아 허브로 우뚝

부산항을 통한 수출입 물량은 지난해 20피트 컨테이너 기준으로 1704만 개에 달해 세계 5위 컨테이너 항만의 지위를 과시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제1의 수출입 관문은 어디일까? 부산시민에겐 유감스럽겠지만 인천이다. 지난해 부산을 통한 수출입 액수는 273억 달러, 인천 670억 달러로 인천이 부산의 거의 2.5배에 달한다.

부산과 인천의 역전은 화물 구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이 중후장대(重厚長大) 한 중화학공업제품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한 정보통신 제품으로 바뀐 것이다. 휴대폰 반도체 등은 짧은 수송시간에 외부 충격을 받지 않는 안정성이 필요한데다 제품마저 작아서 인천공항을 통해 항공기로 실어나른다. 인천이 무역 규모에서 부산을 첫 추월한 때가 2004년이니 "부산항을 통한 대외 무역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한참 옛말이 됐다.

■옮겨지는 물류 축

따지고 보면 부산항이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 것도 1960년대부터 본격 시작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 덕분이다. 대미 대일 수출이 거의 전부를 차지할 때 태평양을 향해 열린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부산과 인천은 자급자족형 도시나, 농업 공업 등의 생산도시도 아닌 물류 거점 도시다. 이런 도시에 외적 조건의 변화는 흥망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북극항로가 부산항의 성쇠를 좌우할 핵심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홍성원 영산대 글로벌물류연구소 소장은 "북극항로는 부산항이 싱가포르항을 제치고 아시아 유럽항로의 허브항으로 우뚝 서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세미나 등에서 외국학자들을 만나면 자신들이 먼저 그렇게 인정한다"고 말했다. 부산항을 통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화물이 크게 늘어나는 데다 경쟁항에 비해 입지 경쟁력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북극항로 물동량은 2015년 28만 TEU(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2020년 398만 TEU, 2025년 1360만 TEU, 2030년 2832만 TEU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항로와 운임 비용이 같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거리 단축 등으로 비용이 떨어질 것은 당연한데 싱가포르항에 비해서는 척당 연간 900억~1200억 원가량 비용이 줄 것으로 해운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같은 경쟁항인 상하이항보다는 130억 원, 홍콩항보다는 320억 원 가량 준다.

이와 관련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분석은 기존 항로 대비 북극항로의 비용이 80%일 때는 2020년 1169만 TEU , 2030년 4370만 TEU에 달하고 70% 일 때는 2020년 1298만 TEU, 2030년 4481만 TEU로 보고 있다.

2030년이면 지난 해 부산항이 처리한 컨테이너 물동량(1702만 TEU)의 1.5~2.6배가 북극항로를 통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미래 부산항의 좌표는

그렇다면 미래 부산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난해 9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주최 '21세기 메가트렌드와 부산경제의 활로' 토론회에서 김윤형 미국 동서문화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북극해 이용과 수송의 시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세계 물류 중심으로 부산항 도약 ▷신해양산업 거점으로 성장 ▷북극 수산자원의 집적·가공·판매 거점화를 부산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제시했다.

한국해양대 김길수 교수는 "북극항로의 상용화에 맞춰 부산항은 현재의 컨테이너 위주 항만에서 싱가포르나 로테르담 같은 다목적 종합항만으로 가야 한다. 화물의 단순 이동지가 아닌 유류 공급이나 조선, 선박 수리 및 금융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류 공급의 경우 현재는 싱가포르가 동아시아 유료 선물시장과 현물시장의 활성화에 힘입어 부산항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지만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북극으로 가거나 북극을 거쳐 중위도로 내려오는 선박의 경우 부산항을 빼고는 마땅한 급유 항만이 없다는 것이다. 선박 수리업 또한 거센 북극해를 헤치고 오거나 헤쳐 나갈 선박들이 잠시 머물면서 선체를 수리할 항만이 필요해진다. 또 물동량과 입출항 선박이 늘어나 선박 금융과 해상 보험 서비스 등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김 교수는 "부산항으로선 싱가포르를 대체해 동북아 허브항으로 부상할 절호의 기회가 북극항로와 함께 오는 만큼 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실의 시간이 온다

북극항로의 상용화는 얼음이 녹는 속도에 비례해 빨라진다. 문제는 부산항의 변화가 그 속도에 맞출 수 있느냐이다. 자동차 운전자가 차량 혼잡도나 도로 상태 등을 감안해 그때 그때 경로를 바꾸는 것과는 달리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정 변경이 없는 한 선박 운항 항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항로 익숙도, 항만 및 부대 시설의 편리성, 거래 계약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황성구 부산항만공사(BPA) 운영본부장은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은 북극항로를 통해 항만 중심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활발한 시험 운항과 관련 연구 및 제도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는 쪽은 더 많은 의지와 준비를 한 쪽"이라며 부산항의 대비를 촉구했다.


# 작은 어촌서 '수출 한국' 첨병 발돋움… 신항으로 제2 도약

- 부산항 변천사

	1960년대 부산항 컨테이너부두 전경. 국제신문 DB

'82척이던 외항선 입항척수가 2만8336척, 수출물량 2만2900t에서 8132만t으로, 수입물량 5600t에서 5554만t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당시 부산항과 현재 달라진 부산항의 위상이다.

지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한 부산항은 지난 137년 동안 역사의 격랑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거듭했다. 특히 1970년대 산업화 물결속에서 부산항은 수출 한국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부산항은 개항 당시에는 어촌 정도의 항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1898년 매립공사와 1906년 부두축조공사가 시작되면서 근대 항만으로 기본골격을 갖췄다.

부산항이 국제무역항으로 발돋움한 것은 1970년대 이후 1~4단계 개발사업을 통해서다. 1974년 11월 수립된 부산항정비개발계획에 따라 제1단계로 5,7,8부두와 연안여객부두, 국제여객부두가 조성됐다. 이 부두들은 현대식 시설과 하역장비를 갖춰 하역 능력이 급증했다. 이어 제6부두 신축과 기존 3,4,5부두 및 중앙부두 개축사업인 제2단계 사업이 IBRD(세계은행) 차관사업으로 1979년 착공돼 1983년 준공됐다. 3단계 사업인 신선대 컨테이너부두와 4단계사업인 감만부두 등 컨테이너전용부두 조성공사가 각각 1991년, 1998년 완공됐다.

이어 2006년 신항이 개장되면서 부산항은 제2의 도약을 시작했다. 신항에는 정부의 제3차 항만기본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컨테이너 전용부두 40선석이 건설될 계획이다. 반면 북항에는 세계적인 친수공간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부산항은 현재 안벽 길이 3만59m, 물양장 9604m, 모두 163척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국제무역항으로 변모했다. 컨테이너 처리실적도 2012년 1704만TEU로 세계 5위 컨테이너항만 자리를 굳게 지켰다.

권순익 선임기자 marine@kookje.co.kr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

◇ 북극항로 물동량·분담비율 전망 운임 수준  물동량(1만 TEU)  분담비율(%) 2015년 2020년 2025년 2030년   2015년 2020년 2025년 2030년 120 1 29 151 406   0.1 1.0 4.0 8.4 110 6 123 553 1342   0.3 4.3 14.6 27.7 100 28 398 1360 2832   1.4 13.9 36.0 58.5  80 246 1169 2513 4377   12.2 40.9 66.6 90.4  70 394 1298 2614 4481   19.5 45.4 69.3 92.5 ※운임수준은 기존 항로를 100으로 했을 때 기준. 분담비율은 기존 항로에서 북극항로로 옮겨가는 비율.  ※자료: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