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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아내리는 유빙 위에서 북극곰 한 마리가 위태로운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북극이사회는 생태계 보호를 위한 기준도 마련한다. 극지연구소 제공 |
# 시작은 거창했지만 그뿐
- 해양대연구센터 5년째 1명
- 市 연구결과 후속조치 없어
- 전문가회의 3년째 개점휴업
- BPA 비전에 북극항로 빠져
# 진행과정 알찬 경쟁항
- 울산항, 중·장기 전략 '착착'
- 동해항, 러시아 등 공동개발
- 북유럽·동남아도 연구 활발
- 부산 "설마"하다간 때 놓쳐
부산 영도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극해 항로'란 이름을 붙인 연구소가 있다. 2009년 설립된 '북극해항로연구센터'다. 북극해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면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오거돈 당시 총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북극항로가 부산항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자'는 설립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초대 연구소장인 김길수 교수를 거쳐 2대, 3대 소장째가 됐으나 이 연구소의 구성원은 설립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연구소장 1명뿐이다.
"정부 차원이나 부산시, 부산항만공사, 해운업계 등의 별도 지원은 받아본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토해양부에 한때 지원 요청을 했으나 '학교 차원에서 알아서 해나가라'는 말만 들었다. 강의 준비에 바쁜 교수 1명이 혼자서 꾸려 가려니 학내에서 한 해 한 번 개최하는 세미나도 버겁다"는 게 연구소 측의 말이다.
■주체 없고 연구성과 공유 안돼
해양대의 북극해항로연구센터 사례는 항만도시 부침의 키워드가 될 북극해나 북극항로에 대해 부산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는 단적인 예다.
그렇다고 부산시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2010년에 해양대 산학협력단에 '북극항로 개항에 따른 부산항 대응방안' 연구 용역을 맡겨 그 결과를 받았고 최근에는 북극해 해양플랜트지원기지 연구 용역도 발주했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 하기 위한 후속 조치는 여전히 가시화 되지 않은 상태다. 3년 전에는 산업계 및 학계, 연구소 인사 20여 명으로 북극해 이용을 위한 자문회의를 구성했지만 설립 당시 회의를 한 이후 근 3년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부산항 항만시설을 관리운영하면서 부산항 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부산항만공사(BPA)도 최근 '부산항·BPA 비전 2030 수립 '계획을 발표했으나 북항 기능 재정립이나 사업 다각화, 재무 건전성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목표연도인 2030년께면 현실화 될 북극항로에 대한 구상은 결여돼 있다. 부산 경제계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로 그나마 부산상공회의소 조성제 회장이 지난달 20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본지 기획 시리즈와 관련, "상반기 중 북극항로가 부산항에 미치는 영향과 부산항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용역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정도다.
결국 북극항로 개척에 대해 지속적으로 구심력을 갖고 추진하는 주체가 없고 시급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도 힘들고 시책이나 정책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엄선희 전문연구원은 "해양수산개발원을 비롯해 극지연구소 해양과학기술원 외교안보연구원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북극해 연구에서는 흐름상 부산항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연구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속성상 부산항 위주의 연구는 불가능하므로 부산시나 부산 경제계, 부산항 관련 기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그 결과를 발전 전략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팔 걷고 나선 국내외 항만들
울산항은 우리나라를 기점으로 하는 북극항로가 맨처음 시험된 곳이다. 2009년 7월 말 독일 벨루가시핑 소속의 화물선 프래터니티호와 포사이트호가 6일 간격으로 울산항에서 출항해 러시아 쇄빙선의 호위를 받으며 한 달 보름여의 항해 끝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에 입항했다. 이런 영향 탓인지 울산항의 미래 전략에 대한 연구는 촤근 아주 활발하다. 울산항만공사는 지난해 8월과 12월 잇따라 해양대와 함께 북극항로 활성화에 대비한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북극항로 오일 허브항' '국제적 물류 거점' '다목적 복합항만' 등이 이런 논의를 거쳐 제시된 울산항의 중·장기 전략이다. 박맹우 울산시장이 예산안과 관련한 시정연설에서 "실물 및 금융거래에서 뒷받침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원도내 최대 무역항인 동해항은 지금 북극항로와 '열애 중'이다. 동해시와 시민, 지역 출신 국회의원, 강원도, 강원발전연구원 등이 삼척 위쪽의 동해항을 '북극항로의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해 나서고 있다. 수도권과 육로로 1시간 거리인 동해항이 국내 어느 항만보다 내륙 접근성이 뛰어난 점을 내세워 인근의 삼척 LNG 기지와 연계해 북극항로 시대를 선점하겠다는 기세다. 강원도는 외국과의 협력체제 구축에도 열심으로 러시아 연해주와 스웨덴 해운업체인 스테나그룹 등과 이미 북극항로 공동개발을 위한 협의서에 서명했다.
외국의 발걸음은 더 빠르다. 아시아~유럽을 잇는 기존 항로에 밀렸던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나 일본 중국의 경쟁항들이 북극항로 중·장기 전략을 수립 시행한 지는 오래고 최근에는 이 항로에서 떨어져 있는 동남아 국가들도 가세하고 있다. 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는 "'대변화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순간이 쇠망의 시작'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싱가포르는 물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항만에서도 북극해와 북극항로에서의 역할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먼저 나서야 정부도 움직여
최재선 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은 "부산은 신항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20여 년 전 신항 계획단계에서 '그 정도까지 필요하냐'는 일부 반대를 받아들여 착수 시기를 늦추거나 포기했다면 지금쯤 변방 항만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SOC(사회간접자본)인 항만을 끼고 있는 해양수산 정책이 기회를 놓치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부산항이 당연히 북극항로 중심이 되겠지'라며 안이하게 있다간 신공항을 둘러싼 부산 밀양 같은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 지자체별 북극항로 선점 노력에 따른 중복 투자와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산이 논의의 주도권을 잡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산의 학계 재계 정계 관계가 먼저 나서야 정부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자원·항로기준 마련, 회원국 '텃세' 거세
■ 북극이사회는
- 한국, 2008년부터 임시 옵서버
- 정식 옵서버에 비해 권한 미미
남극은 바다로 둘러싸인 대륙이고 북극은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이다. 북극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대양으로 수만년 동안 흔히 에스키모로 알려진 이누이트 족과 알레우트 족 등의 원주민이 거주해왔다. 이런 북극에 대해 연안국들의 포럼으로 1996년 9월19일 서명 발효된 것이 북극이사회(Arctic Counsil) 이다.
설립 목적이 ▷북극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북극지역 환경 및 거주민, 생태계 보호 등으로 북극에 관한 제반 기준이 북극이사회에서 마련되고 있다. 북극해에 진출하려는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사회에 참여하려는 이유다.
북극이사회의 정식 회원국은 북극권에 영토를 가지고 있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8개국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스페인 등 6개 비북극권 나라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이 옵서버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임시(잠정) 옵서버가 됐다. 임시 옵서버에서 옵서버로 승격하려면 8개 회원국의 합의를 얻어내야 할 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텃세'가 그만큼 센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5월 스웨덴에서 열리는 북극이사회에서 중국 일본 EU 이탈리아 인도 싱가포르 등과 함께 정식 옵서버가 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펴고 있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은 "옵서버 국가는 북극해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이사회의 결정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시 옵서버와는 권한이 비교도 안된다"고 말했다.
권순익 선임기자 marine@kookje.co.kr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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