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령 스발바르군도 니알슨에 위치한 북극과학기지. 북위 79도의 니알슨은 기후 측정 및 해류 관측에 용이한 지리적 이점으로 북극 연구의 명당이 됐다. 우리나라 다산과학기지가 이곳에 있으며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주요 10개국도 이곳에 기지를 차려놓고 치열한 연구 경쟁을 펴고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북극해는 기회의 바다이고 북극항로는 기회의 뱃길이다. 그러나 이 기회는 우리나라와 부산항만의 기회가 아니다. 해빙으로 인한 환경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이면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각축전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선전포고 없는 영토전쟁' '21세기판 대항해시대의 개막'이란 말이 나온다. 북극항로로 물류비 절감 혜택을 입는 국가만도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대만 홍콩 필리핀 등 아시아권에서만 6개국에다 러시아 영국 네덜란드 독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덴마크 등 20개국을 훌쩍 넘는다. 이들 국가 모두가 대항해에 나선 경쟁자이다.

미지의 바다에선 능숙한 선원, 우수한 선박과 함께 통찰력 있는 선장, 확실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취재과정에서 접한 전문가들이 북극시대를 이끌 컨트롤타워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적 분쟁 가능성

- 환경훼손·안전성·경제성 등 경쟁국 간 복잡한 문제 산재

◇우리만 없는 전담조직

- 연안국·일본·중국 등과 달리 중장기적 정책 대응 불가능

◇북극개척 사령탑 시급

- 부산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부산항 정책입안 반영해야

■기회의 뱃길엔 암초도 산재

북극해 및 북극항로의 개발에 나서는 나라가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암초가 환경 훼손과 함께 선박 운항에 따른 안전성과 경제성의 문제, 공해와 영해를 포함하는 북극해의 특성상 해양경계가 불분명한데서 오는 국가간 분쟁 가능성 등이다.

북극의 환경 변화는 전 지구적 현안이기 때문에 보전과 개발 사이에서 갈등은 여전히 상존한다. 환경단체와 국가 간에 마찰이 벌어지기도 하고 유럽연합과 북극이사회 국제해사기구 등을 중심으로 환경 보전을 위한 다양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 보전은 도외시한 채 경제적 편익만 좇다가는 국가간 협력에서 배제되거나 막대한 환경 비용 부담을 질 수도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에서 열린 북극정책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미국 러시아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이 점을 강조했다.

또 북극해의 혹독한 자연환경은 선체와 각종 장비의 고장을 초래해 해난사고 가능성을 높인다. 기온 상승에 따라 떠다니는 얼음이 많아지면 강한 바람과 결합해 더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국가 간 마찰이 생길 때 구속력을 가진 국제기구가 없는 것도 장애 요인으로 강대국 위주로 해결되거나 불필요한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최경식 한국해양대 교수는 "북극해에서는 사고가 나면 심각한 환경 오염으로 이어지고 국가 간 책임 문제가 발생하는 식으로 문제가 한꺼번에 중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캐나다 러시아 등 북극해 연안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비연안국조차 북극해 전담조직을 갖추고 중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 정부의 1개 부처가 총괄하기에는 소관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부처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일본은 총리를 본부장으로, 관방장관과 해양정책담당대신을 부본부장으로 하는 종합해양정책본부에서 북극해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며, 중국은 신설된 국립해양국에서 북극해를 전담하고 이미 2001년부터 5년 단위로 순차적인 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극에 대해서는 '남극활동 및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원하고 있으나 북극은 관련 법률도 없고 전담 조직도 없다. 북극항로 관련업무는 해양수산부, 이에 수반되는 국제협정 등 대외업무는 외교부, 자원관련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과(課)나 국(局) 등에 나뉘어져 있는 식이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시황분석센터장은 "북극해의 해빙이 가속화될수록 부처 간 협조업무도 많아질 게 뻔한데 이를 통합 조정할 사령탑이 없으면 예산 확보도 어렵고 지속적인 정책 개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산, 정책 입안부터 제 역할해야

황 센터장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가칭 북극해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해양수산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북극해 및 북극항로 관련 산업에 관한 조정과 국제협력, 종합계획 수립, 연구 및 조사 활동 등을 총괄하게 하자는 것이다. 해양수산부도 지난 19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기관별로 분산된 극지정책을 총괄하고 종합정책 수립을 위한 '극지활동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책 총괄기구를 해수부 산하에 둘 경우 정부 부처 서열이 한참 위인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를 조정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와 함께 "북극해 연안국의 경계심을 자극해 불필요한 견제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컨트롤타워 설치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전담 기구의 필요성은 학계, 연구소뿐 아니라 해운 조선업계 등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던 터라 어떤 식으로든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부산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극항로의 상용화는 현재 컨테이너항 중심인 부산항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북극정책의 수립에 부산항의 미래 비전이 반영되는 게 당연하고 그게 또 정책과 현장과의 거리감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부산항에 북극전략연구센터를 설립, 현장과 연계된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부산에 포진한 해운항만 교육기관들이 해기사 교육이나 특수선 운항 경험 전수를 위해 나설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중앙정부보다 연해주 등 지방정부와 개별기업들이 북극항로 개방에 따른 지역 개발에 관심이 많은 만큼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등이 러시아 지방정부나 기업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이에 따른 실무 경험을 정책에 반영되도록 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울산 광양 동해시 등 북극항로에 깊은 이해관계가 있는 타 지자체와 역할 분담이나 공동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해양수산부의 세종시 이전에서 나타난 것처럼 중앙정부의 일방통행을 막고 제안하는 정책을 수용토록 하는데 설득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영활 부산시 경제부시장

- "市 주도 연구팀 구성, 북극해 시대 준비할 것"

"부산시 주도로 부산항만공사, 전문가들과 연구팀을 구성해 북극해 시대를 대비해 나가겠습니다."

이영활(사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북극항로 개설이 부산항의 제2의 도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시 차원에서 적절한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부시장은 "북극해 및 북극항로 문제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되는 문제인 만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전담 연구센터가 필요한지 여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와는 별도로 부산시와 지역 관계기관 및 전문가 그룹들이 북극해 시대에 대비하고 국가적 논의 과정에서 필요한 대응 과제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항은 지금도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북극항로가 생기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싱가포르나 로테르담 같이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허브항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시장은 "향후 10년 정도 지나면 북극해 및 북극항로의 상업화가 가시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북극해 연안국인 러시아와 노르웨이 등과의 외교적 유대관계가 매우 중요한 만큼 재출범한 해양수산부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부시장은 "북극항로 시대의 과실을 최대한 따내기 위해 북극해를 운항할 수 있는 선박기술 등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의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권순익 선임기자 marine@kookje.co.kr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