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국책 해양수산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학소 원장은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해 부산항이 좀 더 선제적으로 항만 기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김학소(58)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접하지 않은 충북의 음성 출신이다. 그런 김 원장은 1984년 KMI의 전신인 한국해운기술원에 공채 1기로 들어와 30년째 해양수산 연구에 몸 담고 있다. 김 원장은 이를 '바다와의 인연'이라 했지만 그가 "바다를 체계적으로 관리 보전 이용하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할 때 기자에겐 '사랑'으로 읽혀졌다. 국책연구소인 KMI는 해운 항만 물류 수산 해양산업 등을 망라하는 세계 유일의 종합해양연구소로 연구원만 200명이 넘는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이 곳 본부장 출신이다. 인터뷰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KMI 원장실에서 진행됐다. KMI는 내년말 부산 동삼동으로 옮겨온다.


■항로·자원 선점 '총성없는 전쟁' 시작

-'온난화의 역설'이라고 할까. 북극해의 해빙이 빨라지면서 아직 개설되지도 않은 북극항로(NSR·Northern Sea Route)가 주목받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북극해 항로가 많은 국가와 기업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번째는 엄청난 거리 단축 효과이다.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를 이용해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보다 거리로는 40% (8000㎞) 이상, 시간으로는 8~11일까지 단축할 수 있다. 이런 거리 단축은 유럽과 아시아 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증가하고 있는 무역의 촉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극 바다는 세계 물류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할 정도다. 둘째는 자원이다. 북극해에는 전 세계 미발견 석유·가스 자원의 22%가 매장돼 있다. 또 전 세계 매장량의 16%에 해당하는 철광석과 니켈, 구리, 우라늄, 다이이몬드 등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 북극해의 연간 수산자원 어획고는 전 세계의 약 40%로 4600만 t 수준이다. 이런 자원의 보고를 놓고 벌어지는 각국의 각축전은 이미 시작됐다.

-북극항로의 장점에도 쇄빙선의 투입이나 추운 날씨와 파도 등으로 인한 운항상의 어려움은 비용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KMI추정으로는 약 20% 정도 운항 비용이 추가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북극해 해빙 속도에 비례해 감소할 것이고 결국은 지금보다 훨씬 줄 것이다. 2030년에 북극해 빙하가 선박의 장기간 운항이 가능할 만큼 녹는다는 전망도 있다. 이런 전망은 과거 2080년, 2040년으로 추정되다가 2030년으로 단축됐으며 지난해 9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북극항로 구간의 전체 얼음이 녹은 적이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극해의 얼음이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녹고 있다는 뜻이다.


■부산, 2030년이면 아시아 ~ 유럽 허브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2년 연속으로 170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넘었다. 그러나 역시 아시아-유럽 항로의 허브항은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이다. 북극항로가 부산항이 허브항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나.

▶당연하다. 2030년께면 부산항에선 지금보다 900만TEU 를 더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북극항로를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갈 때 수심 등의 문제로 부산항에서 중형선박으로 화물을 옮겨싣게 된다. 화물의 절대량이 늘기 때문에 세계 3대 항만이 꿈이 아니다. 그때는 신항만 규모의 항만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부산항과 마산항의 통합운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북극항로 운송 화물은 어떤 것들인가.

▶초기에는 북극해 연안지역의 철광석, 희유금속과 같은 광물자원, 석유, 석탄, 가스와 같은 에너지 자원 그리고 수산자원 등 벌크성(비컨테이너성) 화물이 이 주로 운송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 화물의 95%가 컨테이너다. 벌크화물이 북극항로 주 운송 종목이라면 부산항에는 큰 메리트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초기엔 벌크화물이 주 운송품목이 되겠지만, 컨테이너 운송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산항의 기능이 현재의 컨테이너 중심에서 다기능 항만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본다. 부산항이 글로벌 물류허브로 성장하고 해양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북극항로에 컨테이너 화물이 취급되는 그날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좀 더 선제적으로 항만 기능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중·일 공동으로 연안국 견제 필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이용이 편리해진다면 북극항로를 대체할 수도 있지 않나.

▶사실 우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 무한대인 해상 운송의 처리량과 비교했을 때 철도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은 제한돼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의 1년간 최대 운송량이 100만TEU로, 해상운송시 1만5000TEU급 선박이 60여 회만 움직이면 되는 작은 용량인데 이를 놓고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몽골 그리고 일본까지 나눠 사용해야 한다. 결국 북극항로의 중요성은 다른 물류수단이 대체할 수 없다.

-북극항로가 조선업계 수리조선업계 해양플랜트업계 등에도 기회가 될 것인가.

▶우선 쇄빙선과 얼음에 견디는 내빙선 등 북극환경에 적합한 선박들이 건조돼야 한다. 또 북극해 연안지역의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려면 극지형 해양플랜트가 필요하다. 결국 해당 선박이나 플랜트를 발주해야 하는 수요가 생길 것이며 이는 독보적 기술력을 갖추고 지리적 측면에서도 인접한 우리나라에 기회가 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의 북극항로의 경쟁국은 역시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은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북극항로 개척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9년에 러시아 기업들과 북극항로를 이용한 석유 300만 t 운송 협정을 체결했고 노르웨이와 과학조사, 대만과 북극 공동연구를 실시하고 있으며, 2010년 9월에 노르웨이 츄디해운과 공동으로 러시아 키르케네스항에서 중국 연운강항까지 시험운항에 성공했다. 작년에는 중국 총리가 직접 아이슬란드 스웨덴 폴란드 및 독일을 방문하여 북극항로 이용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일본도 이미 10여 년 전에 북극해와 관련해 상세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한 데다 내각에 북극 태스크포스와 북극항로 검토회를 설치하는 등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위한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쓰이 물산, 미쓰비시 상사 등 일본기업들도 가스전 개발사업 참여 등 북극해 연안 자원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당초 지난해 예정됐던 북극항로 상용화를 위한 시범운항이 좌초됐다. 경쟁국에 비해 뒤지고 있는 것 아닌가.

▶현재는 경쟁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일본 역시 2~3년 전에 시범운항을 하고 제한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북극항로 공동 이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한국 단독보다는 한중일 삼국의 협력을 통해 북극항로의 상용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극 연안국의 견제를 한국 단독보다는 삼국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자체 '각개전투' 막을 컨트롤타워 시급

-북극항로의 관할권을 주장하는 국가와의 마찰은 없나. 또 국제기구의 견제도 만만찮을 텐데.

▶북극항로는 대부분 러시아 연안을 통과하는 구간이다. 자원개발 부분에서는 연안국들과 여러 측면에서 마찰이 예상되지만 북극항로 이용은 러시아와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행히 푸틴정부는 동시베리아 개발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원 수출을 통해 이 지역의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극항로의 이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도 외국 해운선사들의 활용을 반기는 상황이다. 항로 이용 측면에서 우리가 더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IMO(국제해사기구) 등에서 규제하는 환경기준 강화일 것이다. 북극항로의 환경적 중요성으로 인해 항해시 환경기준 강화가 예상된다. 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기술 개발, 정책 지원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지난해 러시아 연해주 지사와 북극항로 공동개발 협의서에 서명하는 등 북극항로에 대한 각 지자체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지자체 간 과당 경쟁을 막고 북극항로의 체계적 추진과 정책 수립을 위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지 않는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최근 강원도, 경남, 울산 등에서 북극항로 이용을 위해 러시아 지방정부와 개별적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 같다. 지자체 간 경쟁적 접근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대 러시아 협상력을 약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KMI는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 컨트롤타워 설립과 함께 관련 법률 제정도 건의했다. 중앙정부가 방향과 전략을 가지고 지자체별·산업별 특성을 고려해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근거하여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물론 북극항로로 가장 큰 변화를 맞게되고 중심항이 될 부산은 정책 제안 등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