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산업 정책금융 지원

- 통상마찰 문제 없었고

- OECD '규칙 내 지원' 규정

- 금융위 해운보증기금 부정적

- 민간재원 마련도 쉽지 않아

- 반발 거세자 "시간 갖고 검토"

- 내년 선거로 미루려는 꼼수

정부가 27일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사실상 포기한 정책금융 재정립 방안을 발표한 이후 업계에서는 "선박금융에 대한 의지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선박금융공사'라는 형태의 중심체 없이 단순히 백화점식·나열식으로 선박금융정책 조직만 잘라내어 부산으로 보낸다고 해서 그동안 업계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던 정책금융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별도로 발주한 용역에서도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 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난색을 보이는 표면적인 이유는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공사 형태로 조선·해운업계를 지원하는 기관을 만들면 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으로부터 통상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그러나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이미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일부 산업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금융지원도 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규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통상마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OECD 규정에도 '정해진 규칙을 지키면서 지원하라'고 명시돼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박금융기구 설립만으로도 통상마찰 소지가 있다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자 업계는 한발 물러서서 해운보증기금이라도 설립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자금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결과 정부의 이번 안에는 민간재원 50% 이상으로 하되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해운보증기금 설립을 검토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이 역시도 "해운업에 대한 지원 시 실질적으로 조선사 지원효과가 발생하므로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과 공동연구 용역을 통해 설립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조차도 불황에 허덕이고 있어서 정부안처럼 민간에서 50% 이상의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많아 업계는 해운보증기금 설립을 요청한 것인데 이조차도 통상마찰을 이유로 무산돼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선박금융공사 설립이나 해운보증기금에 대한 이해도 없고 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비판했다.

부산시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금융위가 우려하는 통상마찰은 전문가의 검토 결과와 해외사례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항으로 선박금융공사 설립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며 "명백한 대선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무산되면 지역의 상실감이 커지고 새 정부의 국정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대선공약 사항의 이행을 강력 촉구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날 발표 직후 부산지역 반발이 거세지자 '선박금융공사 설립 여부와 관련해 결정된 내용은 없으며 통상마찰 가능성 등 관련 쟁점에 대해 관계부처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할 것'이라는 해명자료를 이날 오후 발표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도 부산 표심을 내년 지방선거까지 붙잡아 두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또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위가 한국금융연구원에 별도로 용역을 의뢰한 결과 이미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부정적인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는 조선· 해운 등 특정산업 지원을 위한 별도 기구를 설립하면 WTO 보조금 협정 위반 등 통상마찰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김정훈 정무위원장실에 사전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지난 2월부터 이달 말까지 한국금융연구원에 선박금융공사 설립과 관련한 용역을 진행해 왔으며 최종 보고서는 오는 30일 완료 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