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향초(茶半香初)라는 말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시로도 유명한 이 말은 '찻잔 속의 차를 반이나 마셨는데도 그 향은 처음과 같다'는 의미다. 추석을 보낸 지금의 국내 증시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명절 연휴 전에 거론되던 양적 완화 축소, 시리아 공습, 중국경제 연착륙, 아시아 신흥국 환율 불안 등의 이슈들은 다 지났지만, 증시는 전과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찻잔 속의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언젠가는 향기가 없어진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 듯이 이러한 이슈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약해지고 있고 그 끝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증시는 앞으로 어떠한 흐름으로 움직일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답이 될 만한 의미심장한 상황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 기술적으로 지지선과 저항선이라고 불리는 2000포인트가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과 기관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2012년 1월부터 지금까지 코스피지수는 약 6번에 걸쳐 2000포인트에 약간 못 미치거나 그 이상에 다다랐던 적이 있고, 그럴 때마다 번번이 이를 저항선으로 받아들이고 하락을 거듭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2000포인트를 넘어섰는데도 외국인의 매수세가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반대로 기관은 투신을 중심으로 전과 같이 매도 일색이다. 이는 주가가 2000포인트에 도달하면 펀드나 주식 관련 상품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하락을 예상하고 환매 또는 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매도 공세는 이제 많이 약해졌고, 심리적 저항선인 2000포인트라는 매물대의 벽을 얇게 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주가는 약간의 호재만 있다면 반응을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인과 기관의 매도가 이어지고 있는 코스피 2000선에서 벌써 한 달 만에 약 7조 원의 외국인 자금이 코스피에 물 밀듯이 유입되고 있고, 원화 가치도 최근 중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주가지수가 오를지 내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변곡점에는 도달한 것 같다. 이미 마시던 차를 거의 다 마셔가는데 빈 잔에 채워질 다음번의 '차'는 어떤 향기가 될지, 또 얼마나 그 향기를 이어갈는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가는 시점이다.

정동일 NH농협증권 부산지점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