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29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관심 표명'을 하면서 사실상 협상 참여 수순을 밟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근간인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중심에서 벗어나 FTA와 다자간 협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트랙' 전략을 펴겠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 등의 직간접적인 TPP 참여 요구에도 '관망'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미 발효된 미국·유럽연합(EU)·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과 맺은 FTA를 안착시키는 게 급선무인데다 TPP의 손익이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중 FTA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TPP에서 거리를 두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상정책자들도 TPP보다는 한·중, 한·중·일 FTA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고는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처음으로 'TPP 참여 면밀 검토'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원론적 표명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4월 TPP 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내 TPP 관련 논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이 TPP에 참여하고 한국이 배제될 경우 어렵게 다진 세계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됐다.
정부가 산업계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의견 수렴에 들어간 것도 일본의 TPP 협상 참여 선언 직후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통상정책 관계자는 "일본의 참여 선언으로 TPP에 대한 정부 입장이 전면 재검토되기 시작했다"며 "TPP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일본에 의해 촉발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올해 말까지 TPP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목표 시한을 설정한 것도 한국으로서는 부담이었다.
이어 올 9월 "한국정부가 TPP 협상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가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지난달 초 미국의 유력 통상전문매체인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도 "한국 정부가 TPP 참가를 공식 결정했다"고 보도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이런 가운데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달 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APEC에서 TPP 관련 언급이 있을 수 있다"며 정부의 의중을 에둘러 드러내기도 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에서는 이를 즉각 부인했고 실제 APEC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의 TPP 관련 언급도 없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TPP 협상 참여 선언이 임박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 정부가 TPP 협상 참여국인 호주·뉴질랜드·캐나다와 한동안 중단된 FTA 협상을 재개한 것도 TPP 협상에 '경착륙'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됐다.
지난 15일 대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에서 "TPP 협상 조기 참여의 실익이 없다"는 반대 의견이 다수 제기됐지만 정부 내 친(親)TPP 분위기를 되돌리진 못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