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해의 플랑크톤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이 플랑크톤을 채집(왼쪽)한 뒤 세종과학기지 실험실에서 분석 및 분류하고 있다.

# 왜 모이나

- 오염물질 가장 적은 최고의 자연 실험장
- 과학자들 노력으로 한국 선진국 대열에

# 남극

- 월동대원 자료 수집, 하계대원 분석 초점
- 바닷속 영하 1도안팎 수백만년 이상 유지
- 해양생물들의 낙원

# 북극

- 다산기지 단기체류, 지질·기상 등 연구
- 니알슨 해변 철탑
- 아문센 정신 기리는 인류공영 상징

왜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남극과 북극으로 향할까?

그 답은 극지가 지구상에서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오염이 가장 적어 환경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인구 350만 명이 사는 부산을 예로 들어보자. 북적이는 도시는 소음과 오염된 공기로 가득 차 있어 만약 어떤 물질의 증가와 감소 또는 확산을 연구하고자 한다면 그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극지와 같이 안정된 순백의 환경에서는 대상에 대한 추적과 감시가 용이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극지를 지구 환경 변화가 쉽게 드러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곳이라 부른다.

■남극의 과학연구

	영국에서 온 과학자들이 빙하 시추를 통해 과거의 지구 기후를 조사하고 있다.

남극을 찾는 과학자들은 크게 월동대원과 하계대원으로 나뉜다. 월동대원은 1년 동안 기지에 머물며 장기간에 걸친 환경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조사가 주 업무이다. 하계대원은 남극의 여름철인 12~1월 단기간 방문하는 과학자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월동대원들이 관찰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한다. 대체로 월동 연구는 변화 양상 파악과 자료 수집에, 하계 연구는 분석에 초점이 맞춰진다. 과거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남극에 대한 모든 연구를 총괄해왔다면 지난 12일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으로 역할을 분담하게 됐다.

남위 74도 37분인 장보고과학기지는 남위 62도 13분인 세종과학기지보다 고위도에 있다. 이제는 남극 최북단이라는 위치상의 한계로 세종과학기지에서는 연구가 힘들었던 고층대기학, 빙하학, 광물학, 극지공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 역할 분담으로 몸이 가벼워진 세종과학기지는 해양환경과 연안생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2006년 기자가 관찰한 남극 바닷속은 성게, 해면, 조개, 남극대구, 크릴 같은 해양생물들의 천국이었다. 부산 앞바다만 해도 여름과 겨울의 수온 차가 20도에 이르는데 남극 바닷속은 일 년 사계절은 물론 수백만 년 이상 영하 1도 안팎의 안정된 수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수온에 적응만 한다면 이곳만큼 해양생물들이 살기 좋은 곳은 없는 셈이다.

남극 해양생물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적 연구는 한국해양개발연구소(현 한국해양연구원) 초대 소장을 역임한 고 이병돈(1926~95년) 동의대 총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963년 미국 텍사스A&M대학 박사과정 재학 시절 세 차례 남극 탐사에 참여해 남극 해양생물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크릴이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남겼다. 인류가 1년 동안 소비하는 수산물의 양이 1억t인데 비해 10억~50억t에 이르는 크릴의 자원량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해양생물학자들에게 관심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북극의 과학연구

	극지 얼음 속에 있는 공기 방울은 눈이 내릴 당시 지구의 대기 성분을 간직하고 있다.

북극을 찾는 각국의 과학자들은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군도 스피츠베르겐 섬의 니알슨 과학기지촌으로 모여든다. 니알슨 과학기지촌은 노르웨이의 국민적 영웅인 로알 아문센(1872~1928년)의 북극 탐험 전진기지가 된 곳이다. 아문센은 1926년 이곳에서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을 지나 알래스카까지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비행선을 묶어 두었던 해변에는 철탑이 우뚝 서 있어 아문센의 도전이 인류 공동번영을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정신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산과학기지에서 우리나라의 주된 연구 분야는 지질, 기상, 고층대기 물리, 해양 및 육상생태계 모니터링, 신물질 개발 등이다. 북극 다산과학기지를 찾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일정에 맞춰 비교적 단기간 체류한다. 이는 1년 내 기지대원들이 상주하는 남극의 과학기지와 다르다.

기자가 2008년 북극을 방문했을 때 영국에서 온 빙하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남극과 북극을 덮고 있는 얼음은 1억 년 이상 내린 눈이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다져져서 만들어졌다. 눈이 굳어져 얼음이 만들어지다 보니 얼음 속에는 눈이 내릴 당시의 공기가 갇혀 있다. 빙하학자들은 시추공을 이용해 수백m 아래에 있는 얼음을 캐내 얼음 속에 갇혀 있는 공기를 뽑아낸다. 공기 속에 이산화탄소가 많으면 눈이 내렸을 당시 지구가 따뜻했다는 증거가 되고, 화산재가 섞여 있으면 인근에서 대규모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구상에서 원시 지구의 공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은 극지의 빙하뿐일 것이다. 결국 남극과 북극의 얼음은 지구 기후의 비밀을 간직한 타임캡슐인 셈이다.

■극지, 과학 한국의 프런티어

남극과 북극을 오가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가 국익에 공헌한다고 자부한다. 우리나라가 1989년 10월, 세계에서 23번째로 남극 협의당사국 지위를 얻어 향후 남극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1988년 2월 건설된 세종과학기지의 실질적인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2002년 4월 24일 북극에서의 자원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북극과학위원회(IASC)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 나흘 뒤에 개소 예정이었던 다산과학기지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남극 세종과학기지, 북극 다산과학기지에 이어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를 보유하는 등 극지에 3개의 과학기지를 운영함으로써 극지과학 연구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극지에 대한 입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글·사진=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남극 장보고과학기지…결빙방지물질·신약 연구, 극한기술 '테스트 베드'

	세종과학기지 월동대원이 스쿠버 장비를 이용해 남극 빙산 밑을 탐사하고 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는 극한지 실용기술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해양수산부 문해남 해양정책실장은 23일 "극한지 플랜트, 장비, 로봇, 신소재 같은 극한지 실용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 산·학·연에 장보고기지를 테스트 베드로서 활용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극지 생물이 저온에 적응하는 생존술, 특히 체내에 있는 '결빙방지물질'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극지연구소에서 특허를 받은 항산화물질 라말린(Ramalin)의 기술이전을 통해 LG생활건강이 기능성 화장품 '프로스틴'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수부는 설명했다. 라말린은 남극에서 강한 자외선을 견디며 저온에서 살아남은 생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산소반응을 억제해 피부 노화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

해수부는 앞으로 장보고기지에서 적조 해소 관련 기술과 이형당뇨병(typeⅡ diabetes mellitus)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북극의 대구, 빙어 등은 매우 낮은 수온에서도 혈액이 얼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결빙방지물질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물질을 추출해 '천연 부동액'을 만들어 시장성을 확보한다면 혈액, 골수, 조직을 보관하는 냉동보관시장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영화에 나오는 냉동인간이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