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플랜트서 30~50% 삭감 예사
- 건조 끝난 후 새 일 못찾아 막막
- 협력업체 폐업 속출 피해 눈덩이
- 올해 임금체불 신고 가파른 상승
- 3만여 명 중 2만여 명 실직 우려
-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 목소리

사례1. 경남 거제의 대형 조선소 협력업체에 도급을 받아 트레일러 등 특수장비를 대는 김모(51) 씨는 작업비가 두 달 치나 밀렸는데도 오히려 협력업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밀린 대금을 독촉하면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잃을 게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협력업체 밑에서 일하지만, 일반사업자로 등록돼 체당금(회사의 도산으로 실직한 근로자가 사업주로부터 임금 등을 받지 못하면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지급하는 임금) 등 법적 보호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다. 장비업자에게는 한 달 이상 작업비가 밀린 게 일상처럼 받아들여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사례2. 얼마 전까지 협력업체 물량팀(재도급 일용직)에 근무한 이모(43) 씨는 최근 원청의 해양플랜트 건조 물량이 끝나면서 일자리를 잃었지만, 아직 새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일당이 15만 원 정도 됐는데, 밀린 임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30% 삭감된 임금을 받든지, 아니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협력업체가 배짱을 부려 할 수 없이 삭감된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례3. 또 다른 협력업체와 일하는 장비업자인 하모(47) 씨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모순덩어리라고 비난했다. 그는 "조선업을 망친 정부와 조선사 부실 경영 책임자, 채권단이 책임져야 하는데 가장 먼저 물량팀과 장비업자가 잘려나가고 있다. 최일선에서 열심히 일만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업라인 끝자리, 칼바람은 맨 앞"

조선업종 구조조정 와중에 협력업체에서 재도급을 받아 일하는 물량팀과 장비업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대형 조선소~사내 하청~사외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작업라인의 끝자리에 있는 이들이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협력업체는 원청으로부터 기성금(작업의 진척도에 따라 지급하는 금액)을 받지만, 원청 측에서 경영난을 내세워 납품단가를 깎으면 이는 결국, 작업라인 맨 아래의 장비업자와 물량팀 임금 체불로 이어진다. 인건비가 기성금보다 많이 들거나 여러 사정으로 단가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협력업체는 인건비를 평소보다 30~50% 줄이는 게 다반사인 탓이다.

경남 거제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원청에서 30%씩 납품단가를 후려치면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 협력업체 부도는 최일선에서 일하는 물량팀과 장비업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거제의 한 대형조선소 관련 협력업체만 10여 곳이 최근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조선소의 협력업체들도 연쇄적으로 부도나기 직전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거제지역에서만 2만 명이 넘는 물량팀, 장비업자 가운데 3분의 2가 구조조정 탓에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들에게 4대 보험 등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비정규직이어서 체당금을 신청할 대상도 아니다. 물량팀의 경우 지난달부터 6개월 이상 근무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근로자에 한해 체당금 신청조건이 완화됐지만, 이를 신청하는 이는 극소수다. 일감이 생기면 모였다가 단기간에 끝내고 흩어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지난 11일 거제의 한 대형조선소의 건조 중인 선박 블록 내에서 물량팀 김모(42) 씨가 목을 매 숨진 것도 임금 체불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살리기대책위원회'는 체불임금 해결 등을 둘러싸고 소속 회사와 갈등을 겪은 뒤 다른 협력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원청에서 이를 문제 삼아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임금 체불 매월 가파른 상승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들어 임금 체불 규모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1일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에 따르면 거제·통영시, 고성군 관내 임금 체불 신고 근로자와 금액은 지난 1월 1041명에 60억 원에 그쳤으나 2월에는 1361명에 71억 원, 4월은 2531명에 123억 원, 6월에는 4269명에 200억 원에 달했다.

지난 1월보다 임금 체불 신고자나 액수가 6개월 사이 모두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월 기준(2944명, 117억 원)과 비교해도 1325명, 83억 원이나 늘어났다. 이러한 임금 체불 업체는 협력업체가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실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임금이 체불됐는데도 물량팀의 상당수, 장비업자 대다수는 신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력 감축 위주의 조선업 구조조정보다는 하청과 재하청 등 다단계 도급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