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경제성장률 하향세
- 법정관리 기업 사상 최대
- 외환·금융위기 '데자뷔'

- 트럼프 정책·中 사드 보복
- 대·내외 악재, 靑게이트 겹쳐
- "실물경제 전반 위협" 심각

- 유가 상승·신흥국 경기개선
- 펀더멘탈도 20년 전과 달라
- 경제주체 기본 충실땐 기회

대내외 악재로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가 '정상궤도 복귀'의 분수령이 될 운명의 한 해를 맞았다. 올해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정확히 2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는 금융·외환시장에 주로 한정됐던 1997년 위기보다 오히려 심각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불거진 각종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미친 데다 올해 역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등 '신(新)파고'를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10년 주기 경제 위기설'이 거론되는 이유다.

다만 긍정적인 시그널도 일부 존재하는 만큼 정부의 경제 리더십 회복 여부에 따라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본지는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맞아 현재의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과 활로를 모색하는 시리즈를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한국 경제 '1997년 데자뷔'

"1997년과 2008년에 이어 다시 위기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과거 외환·금융위기 때의 시나리오가 거의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중순 개최한 세미나에서 건국대 오정근 특임교수가 '10년 주기 위기설'을 거론하며 한 말이다. 정치·사회·외교 등 다방면에 걸친 우리 경제의 현 위기 상황이 '정치적 문제→금융 부실→기업 부도→외국인 자금 유출→외환위기'로 요약되는 20년 전 IMF 사태와 '세계경제 둔화→정치적 리스크 확대→미국 리먼브라더스 파산→외국인 자금 유출→외화 유동성 위기'로 귀결된 10여년 전 금융위기 때와 매우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7년 데자뷔'로까지 불리는 현재의 경제 위기는 일부 지표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기획재정부 기준)은 ▷2014년 3.3%(확정치) ▷2015년 2.6%(확정치) ▷2016년 2.6%(전망치) ▷2017년 2.6%(전망치) 등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1995년 9.6% ▷1996년 7.6% ▷1997년 5.9% 등 IMF 사태 직전과 비슷한 흐름이다. 2000년대 중·후반에도 '2006년 5.2%→2007년 5.5%→2008년 2.8%→2009년 0.7%'의 흐름을 보였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영국 신용평가사 '피치' 발표)은 지난달 기준 'AA-'로 IMF 사태 직전인 1996년 말과 같다.

외환 보유액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3720억 달러 수준이다. 이는 1997년 11월 말(4473억 달러)보다 오히려 753억 달러 부족한 액수다. 한보와 삼미 등 주요 기업이 줄도산했던 1997년 당시 상황은 지난해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으로 똑같이 재현됐다. 법원 파산부가 관리하는 전국의 법정관리 기업 수 역시 지난해 말 기준 1150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의 위기, 기회로 삼아야

문제는 올해 역시 우리 경제를 강타할 '신파고'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달 20일에는 보호무역주의 강화 정책을 추진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다. 최대 세 차례로 예고된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국내 가계부채 부실과 한계기업 증가세 등이 가속화되거나 '트럼프 정책'과 맞물려 수출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지속과 위안화 절하, '하드 브렉시트'(영국과 EU의 완전한 결별) 가능성 등도 미국발 악재 못지않은 대외 리스크로 꼽힌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박병원 회장은 "지금의 위기는 외환위기에 국한됐던 20년 전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실물경제 전반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봐도 빨간불이 켜진 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게이트'로 불거진 정치적 불확실성의 지속이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이미 재계에서는 그룹 총수들의 검찰 수사 등으로 일부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의 경제 리더십도 원활하게 발휘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 심리(최장 180일)와 대선 준비 기간(60일) 동안 종합적인 위기 관리 시스템 가동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시립대 윤창현(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에는 내풍과 외풍이 복합적으로 몰아치고 있다"며 "경제와 정치 영역의 분리가 필요하다. 모든 경제 주체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정부는 경제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각종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어서 1997년과 2008년만큼의 파고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면 2017년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양해정 연구위원은 "유가 상승과 주요 신흥국의 경기 개선 흐름 등 우리 경제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요인도 있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정도의 위기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