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감 없어 조업단축에 구조조정
- 원재료값 1년새 20% 올랐지만
- 대기업 납품단가 올리지도 못해
- 카드 한도 줄어 자금 압박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10일 오전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의 한 조선해양기자재 업체 A 대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산업 불경기 여파가 관련 업종이 모인 미음산단에도 불어닥쳤다. 그나마 A 대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프랑스 업체에 해양플랜트 부품을 직접 납품했기 때문이다. 직장 다닐때 쌓은 인맥을 활용해 버티기에 들어간 덕분이다. 그래서 A 대표는 오후 4시면 공장 가동을 멈추는 옆 공장에 비해 서너시간 늦은 시각까지 공장을 돌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호황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A 대표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현재 생산에 꼭 필요한 5명의 직원만 남겨뒀다"며 "직원 월급을 미룰 수는 없다는 판단에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철강회사 등 원재료 비용도 올랐다. 지난해 대비 20%나 원재료 값이 뛰었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원재료 가격이 오른 만큼 납품 단가를 올리는 것도 어렵다.

금융권도 중소기업 '버리기'에 나섰다. A 대표는 "2400만 원이던 법인카드 한도가 300만 원으로 갑자기 줄었다. 한도가 낮아지면서 지난달 원재료 대금으로 300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등 자금 압박도 심하다"고 토로했다. 거래 은행의 지점과 본점에 불만을 나타냈으나, 서로 책임을 미루는 핑계만 돌아올 뿐이었다.

A 대표의 어려움은 지역 조선기자재 업계 상황을 대변한다. 조선기자재협회 최병국 전무는 "370개 업체 중 현상 유지를 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최근 삼성중공업이 1조 원대 수주를 하는 등 희망적인 신호가 나타나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지역본부가 내놓은 2016년 10월 명지녹산국가산업단지 산업동향에 따르면 조선기자재 산업이 속한 운송장비부문 생산액은 전년 동월(942억7200만 원) 대비 18.8% 떨어진 765억1900만 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고용은 무려 26.8% 떨어진 3053명에 불과했다. 이 부문 고용은 2015년 10월 4174명에서 지난해 7월 3228명, 8월 3195명, 9월 3128명으로 점진적으로 하락 추세에 놓여 구조조정이 벌어짐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업황이 좋은 전기전자 부문의 고용은 같은 기간 5782명에서 5919명으로 2.4% 늘었다.

정부 지원도 '그림의 떡'이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공공선박 조기발주 및 펀드 조성 등 총 11조 2000억 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지난해 10월 발표한 바 있다. 이외에도 조선기자재 산업이 육상 발전소 부문 기술 개발 등 사업 다각화 지원에도 나설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 수주 물량은 결국 군함 등 특수선에 몰려 있으며, 이마저도 3월이 되면 모든 사업이 끝난다"며 "해외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지만, 정부만이라도 제기능을 빨리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건태 기자 fastmk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