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수주 잔량 13년 전 수준
- 일본에게 17년 만에 추월 당해
- 해외선사 '전방위 공습'까지
- 정부는 무원칙 구조조정만

- 내년 이후 회복될 가능성
- 철강·금융과 상생안 만들고
- 사업영역 넓혀 위기 극복을

- 지역 기자재업체도 영역 확장
- 발전소 등에서 일감 따와

한국 경제의 근간인 조선·해운업은 지난해 매서운 칼바람을 맞았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며 '수출 효자' 종목으로 불린 이들 산업은 컨트롤타워 없이 '금융 논리'로만 진행된 정부의 구조조정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한진해운의 몰락과 이에 따른 물류 대란, 대규모 실직 등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10일 미음산단 내 조선기자재 업체 공장에서 직원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 업체는 조선업 불황에 따라 직원을 대폭 줄였다. 전민철 기자

문제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20년을 맞은 올해 역시 업황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면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 ▷사업 다각화 ▷연관 산업과의 협력 체계 구축 ▷체질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본지는 신년기획 'IMF 구제금융 20년, 신(新) 파고를 넘자' 시리즈 중 두 번째 순서로 국내 조선·해운업의 현 주소와 올해 업황 전망, 위기 극복 방안 등을 알아 봤다.

■'무원칙' 구조조정에 침몰 위기

2016년 어둠의 터널을 지나 정유년 새해를 희망차게 맞았어야 할 국내 조선업은 지난 4일 발표된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 '클락슨'의 자료로 또다시 큰 충격에 빠졌다. '비축해둔 일감'을 의미하는 수주 잔량(지난해 12월 말 기준 1991만6852CGT·잠정치)이 1999년 12월 말 이후 17년 만에 일본(2006만4685CGT)에게 추월 당한 것이다. 한국의 수주 잔량이 2000만CGT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03년 7월 이후 13년 만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수주량(잠정치) 역시 150만CGT로 전년(1070만CGT·확정치) 대비 86%나 급감했다. 2016년 1~3분기 조선 빅3(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의 당기순손실(누적) 규모는 5243억 원에 달했다.

국내외 기관의 이 같은 통계는 극심한 '수주 절벽' 속에서 구조조정 수술대에까지 오른 조선업의 '사면초가'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주 침체에 따른 선박 생산 감소와 산업 재편이 지난해 조선업 위기를 대변하는 키워드"라며 "2018년 이후에나 회복 및 안정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돌입은 그 여파가 조선업보다 컸다. 물류 대란을 예측하지 못한 정부의 '원칙 없는' 구조조정 탓에 해운업을 넘어 국내 경제 전반이 휘청댔다. 그나마 현대상선은 생존에 성공했으나 국책 은행인 산업은행에 경영권을 넘겨줘야 했다. 부산항의 물동량 감소와 협력업체의 줄도산, 해외 선사의 '전방위 공습'은 이미 현실화된 지 오래다. 수주 절벽과 공급 과잉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조선·해운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지난 1년간 추진한 고강도 구조조정이 결국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체질 개선하면 위기 극복 가능

그렇다면 올해 조선·해운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구조조정의 후폭풍을 견뎌낼 만큼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 상당수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 경제연구소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기관 및 단체들은 지난해 11~12월 발표한 경제전망 자료에서 국내 주요 산업 중 올해 가장 부진하거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으로 조선·해운업을 꼽았다. 산은에 따르면 올해 국내 조선업계의 선박 수출액은 315억 달러(전망치)로 2016년(367억 달러) 대비 14.3%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해운 물동량은 지난해 110억9900만t에서 올해 114억3200만t으로 소폭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조선·해운업이 연관 산업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거나 관련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을 통해 활로 모색에 나선다면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선주협회 이윤재 회장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더욱 어려운 한 해가 될 전망이지만 국제유가 상승과 같은 청신호도 기대된다"며 "올해 조선·해운업은 철강과 금융 등 연관 산업과 상생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활력을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했다. 산은 산업분석부 전정하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 해운업은 체질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업계에서도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거나 '가뭄 끝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1년 6개월 만에 해양플랜트 설비(1조5000억 원 규모)를 수주했다. 부산의 일부 조선기자재 업체도 선박 부품 제조뿐 아니라 발전소 등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