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리스크에 직면한 한국 경제가 20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에 준하는 총체적 덫에 빠졌다. 2% 중반대로 낮아진 정부와 통화당국의 2017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이를 증명한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조기집행 등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뚜렷한 반등세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 악재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로봇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조속히 정책 리더십을 정비하고 차분히 준비하면 한국 경제에 불어닥친 험난한 파도를 이겨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사진은 지난해 말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6'을 찾은 관람객들이 VR게임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서정빈 기자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과 가계 등 경제 주체가 기본에 충실하고 정부의 경제 리더십이 하루 빨리 회복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 불씨가 살아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본지는 신년기획 'IMF 구제금융 20년, 신(新) 파고를 넘자' 시리즈 중 마지막 순서로 올해 한국 경제의 위기극복 방안과 중장기 체질개선 대책 등을 전문가들의 조언과 일부 기관의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알아 봤다.

■"대선 정국→기업 투자 위축 우려"

18일 경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2017년 한국 경제의 리스크는 대외 요인의 경우 ▷미국발 악재(트럼프 행정부 출범 및 금리 인상) ▷'차이나 리스크'(중국의 경기 둔화 및 무역 규제) ▷유로존의 경기 회복 지연 ▷하드 브렉시트(영국과 EU의 완전한 결별) 등으로 요약된다. 대내 요인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대에서 멈춰진 경제성장률과 가계부채 문제,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위축과 수출 악화, 내수 부진 등은 우리 경제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불거진 정치적 리스크는 실현 가능성이 커진 '조기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재계의 경영 활동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은 법 자체의 목적과는 별개로 극심한 소비심리 악화를 불러왔다.

이와 관련해 현대경제연구원 강인수 원장은 "내수의 추가 침체를 막고 수출 회복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뿐 아니라 잠재 성장률 제고 방안과 경제체질 강화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한국 경제의 덫'인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득계층과 자산규모 분포 등을 고려한 질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제 회복의 바로미터인 수출에 대해서도 "국가별 FTA(자유무역협정)의 활용도를 높이거나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신(新) 시장을 개척한다면 회복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4955억 달러로 전년 대비 5.9% 줄었다. 2015년에도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수출액이 2년 연속 줄어든 것은 1957~1958년 이후 58년 만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권태신 원장은 '조기 대선' 가능성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위축을 우려했다. 그는 "올해 우리 경제는 경기상승 국면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L자형'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대선 정국과 낮은 제조업 가동률을 고려할 때 투자는 상당 기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은 전년 동월(74.0%) 대비 3.7%포인트 하락한 70.3%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10월 기준으로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69.8%) 이후 최저치다.

권 원장은 "제조업 수출만으로는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경제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이 제시돼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권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의 조속한 진입 ▷'제조업+사물인터넷' 형태의 신기술(무인 생산 모델 등) 개발 ▷의료 관광 교육 등 서비스 산업의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부총리에 전권 부여할 필요"

학계에서는 정부의 경제 리더십 회복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가계부채 문제, 구조조정 후폭풍 등에 대비한 정책이 있다고 해도 컨트롤타워 없이 추진된다면 동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건국대 오정근(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 경제정책의 전권을 유일호 경제부총리에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그는 정치권을 향해 "적어도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야가 정쟁을 중단하고 '위기 예방에 초당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합의를 한 뒤 대국민 선언을 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의 경우 올해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완전히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립대 윤창현(경영학부) 교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신산업 육성을 위한 민관 협력체제 구축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발빠른 대응 ▷'일자리 만들기'에 모든 경제정책 집중 등을 주요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아울러 경제와 정치 영역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 교수는 "두 영역이 겹치면 혼란이 생겨 상당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정경유착의 근절을 촉구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