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업계 두 수장 사이에 '설전(舌戰)'이 벌어졌습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신탁업법을 놓고 공방이 오간 겁니다. 신탁업은 주식이나 예금, 부동산 등 투자자 재산을 금융회사가 위탁받아 관리·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금융당국은 새로운 플레이어의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를 정비하는 등 신탁업 관련 새 틀을 짜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를 두고 지금까지 신탁업을 해온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와 장외에 있는 은행권의 속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포문을 연 것은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입니다. 그는 지난 6일 "은행·보험에 비해 금융투자업계가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밝혔습니다. 증권사에 기업 지급결제와 외화환전이 허용되지 않는 것을 예로 꼽았습니다. 신탁업에 대한 은행 등 다른 업권의 진출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있고 사냥꾼이 있는데 사냥꾼은 사냥하고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를 해서 쌀과 꿩을 거래하는 교역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지 업권 간 경계가 사라져 버리면 다시 원시사회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에 지난 20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는 '종합운동장'론으로, '전업주의'에 대해서는 '겸업주의'로 말이죠. 하 회장은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니라 운동장이 다르다"며 "(증권업에) 지급결제, 환전 업무를 허용 안 하는 것에 대해서 운동장이 기울어 졌다고 하는 건 농구를 하는 팀이 발뿐만 아니라 손도 쓰면서 축구경기에 참여하겠다는 뜻이다. 축구경기를 할 때 손 쓰는 걸 허용 안 해줘서 운동장이 기울었다고 하는 격이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정부는 신탁 관련 제도 전반을 아우르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연내 '신탁업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입니다. 기획재정부·법무부·금융위원회는 합동으로 신탁업 발전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지난 8일부터 5월까지 약 4개월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TF팀장을 맡은 금융위 김용범 사무처장은 "신탁이 지금처럼 금융사들이 경쟁적으로 상품을 팔기 위한 판매수단이 아닌 외국처럼 신탁 본연의 종합재산관리기능이 활성화되도록 신탁업법안을 마련할 것이다"고 합니다.

'썰전'을 방불케 한 두 수장의 발언은 금융업의 영업환경이 어려워진 데 따른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금융업계의 관심이 높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은 사안이라는 뜻일 겁니다.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