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이달 말까지 소각하기로 했습니다. 이 채권은 21조 원 규모로, 123만 명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기도 합니다.

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금융사들이 법원의 지급명령 등을 통해 시효를 연장하는 경우가 많아 연체가 발생한 뒤 약 15~25년이 지나야 소멸시효가 완성됐습니다. 이렇게 소멸시효가 지나면 채무자는 더 이상 채무 변제 의무가 없지만 채무 일부를 갚을 경우 시효의 이익 포기로 인정돼 채무가 부활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A씨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IMF 시절 장사가 어려워져 늘어난 빚과 생활고로 20년 가까이 힘들게 지내온 A 씨는 ‘B대부’에서 발송한 채무변제 안내장을 받았습니다. 안내장 내용은 ‘일부 선납금만 납부하더라도 원금을 대폭 감면해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금융거래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A 씨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기존 채무에 대한 선납금을 납부한 후 감면된 금액의 채무이행각서를 작성했죠. 그러나 ‘B대부’는 매입채권추심업체로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법률지식이 없는 서민들을 상대로 더 이상 변제의무가 없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부활시켜 다시 추심하는 업체였습니다. 업체가 다시 강한 추심을 재개하면서 A 씨의 고통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채권을 소각하면 부활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제거되므로 채무자의 심리적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금융당국은 연체기록, 시효완성 여부 등의 기록을 완전히 삭제해 관련 정보가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차단한다는 방침입니다. 대부업체를 제외한 민간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약 4조 원(약 91만2000명)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도 연내 업체의 자율적 소각을 유도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방안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위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경우 법에 따라 더 이상 채권자의 상환 청구권이 없다. 채무자의 상환의무가 없는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므로 도덕적 해이 우려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이들과의 형평성 논란은 풀어야 할 숙제로 보입니다.

채무자는 9월 1일부터 자신의 연체 채무가 소각됐는지를 해당 기관별 조회 시스템이나 신용정보원 소각채권 통합 조회 시스템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