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소상공인 250명 주도로
- 2년 전 꾸린 전국출장세차조합
- 조합원 불이익에 소송 등 대응
- 생계형 업종 대변인 역할 톡톡
- 아파트 고객들 갑질 사라지고
- 대기업 시장 진출도 막아내
- 중국에 해외사업본부도 설치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 출장세차 소상공인 250명이 모여 2016년 8월 설립된 ‘전국출장세차협동조합’ 조합원들은 깊은 감회에 사로잡혔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에 출장세차 교육센터를 만들었던 것. 조합원들이 손세차 노하우를 나누고 고도화해 서비스를 표준화할 일종의 연구개발 센터인 셈이다. 이 협동조합은 생계형인 출장 세차업에 대기업이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소상공인들이 이를 막으려고 모이면서 조직됐다. 이들 소상공인이 뭉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맞짱’을 뜨자 대기업도 사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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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래구 한 상가에서 전국출장세차협동조합 조합원이 세차를 하고 있다. 이 협동조합은 소상공인이 대기업의 출장세차 진출 저지를 위해 모인 것을 계기로 조직됐다. 서순용 선임기자 |
■‘을’들이 뭉치자 갑질은 ‘옛일’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크게 사회적 협동조합과 일반 협동조합으로 나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단체로 운영되며 수익을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일반 사업자들이 설립할 수 있는 일반협동조합은 이윤 추구가 가능하다. 일반협동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사회적 약자계층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협동조합인 전국출장세차협동조합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조합으로 뭉치니 아파트 입주자 대표의 ‘갑질’이 사라졌다. 출장세차 업종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보해 이들 입주민을 대상으로 출장세차 서비스를 한다. 아파트단지를 차지하려면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남는 시간에 전단을 돌리는 등 상당한 시간 동안 홍보를 해야 한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세차비를 낮추는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렵게 차지한 사업 영역을 하루아침에 잃는 경우는 허다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출입을 막으면 그동안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 아파트 단지를 차지한 출장세차 업자와 입주자 대표가 친한 사이라는 소문도 들려온다.
그렇지만 출장세차업자들이 협동조합으로 뭉치자 이 같은 일은 더 발생하지 않는다.
전국출장세차협동조합 신호범 이사장은 “조합원들이 불이익을 당하면 조합 차원에서 집회를 열거나 소송을 벌이는 등의 대응을 했다. 그러자 1년도 안 돼 갑질이 사라지고 사업 영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이 뭉치니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났다. 이들은 협동조합 공동으로 손세차에 사용하는 제품을 공급받아 가격을 30% 낮춘다. ‘을 중의 을’인 생계형 소상공인의 가장 큰 숙원인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는 셈이다. 협동조합에 가입된 점포는 전국 31 곳. 수 백명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공급처와의 가격 협상에 힘이 실린다.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이 조합의 설명이다.
그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업 확장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협동조합은 중국에 해외사업본부를 두고 시장 확대를 추진하는 한편, 셀프세차장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전국출장세차협동조합 김병로 해외사업부 본부장은 “각자 흩어져 있었을 때는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뭉치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자금과 아이디어가 생긴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앞으로 공동 콜센터와 앱도 운영할 예정이다.
■시장 지형도 바뀔까?
출장세차 외에도 생계형 업종의 소상공인들이 모인 다양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설립을 준비 중이다. 퀵서비스 및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도 운영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갖춰 유력사업자로 성장한다면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동네 상권에서 주목하는 협동조합 유망 업종은 무척 다양하다. 동네 세탁소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적합한 업종이다. 공동 세탁공장을 마련해 업무를 나누면 서비스 종류와 속도 면에서 체인점을 이길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한 소상공인은 세탁과 수선 기술이 탁월해 세탁, 다림질, 수선, 배달 등으로 분업해 운영하면 서비스 속도와 가격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동네 슈퍼가 모인 협동조합 모델도 프랜차이즈에 대응할 모델로 손꼽힌다. 과일, 채소, 정육, 공산품 등으로 쪼개진 동네 영세 슈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뭉치면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청소와 경비, 퀵서비스 등 각 분야 근로자들도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용역회사 등이 가져가는 몫을 출자금으로 돌리면 결국 조합원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은 불황일 때 임금을 낮추는 등 신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근로자협동조합은 고용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일자리 문제에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 지원을 믿고 부실한 사업계획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가는 자칫 초기 자본금만 날리고 기존 사업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원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의 한 협동조합 대표는 “정부 지원금만 바라보고 시작해서 망한 협동조합이 적지않다. 제대로 된 협동조합에 지원금이 나가야 하지만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지원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사업자들이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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