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 평균 2000여 명 산재 사망
- 산안법 30년 만에 전면 개정
- 탐욕 화신 ‘위험의 외주화’ 제동
- 사업주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
- 노동자 5년 내 2회 이상 사망사고
- 형 50% 가중·벌금상한 10억으로
- 배달원 안전사고 책임자 명문화
- 하청·프랜차이즈 노동자도 보호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30년 만에 개정됐다. 지지부진하던 개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사망으로 산업 현장 안전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일부 개정이 아닌 전면 개정이다. 관심이 쏠린 배경에는 비정규직이 열악한 근로 조건과 고용 불안정에 더해 위험까지 견뎌야 하는 냉혹한 사회·경제 구조를 비판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특히, 30년 전 제조업 현장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법안이 프랜차이즈 노동자 등 서비스직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  |
| 산업안전보건법은 30년 만에 원청의 안전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사진은 지난해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현장에서 근로자 4명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소방대원과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 국제신문DB |
■위험한 외주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하청업체 소속 김모(19) 씨가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위험의 외주화’가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비슷한 사고는 이후에도 계속 일어났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작업장에서 4명이 숨졌다. 모두 원청인 포스코건설의 하청 업체 소속 근로자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전·정비 업무를 맡은 하청업체 소속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 숨졌다.
30년 동안 산업 현장에서는 한 해 평균 2000여 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목숨을 잃는다. 그 이면에는 이익에만 치우쳐 안전을 외면하는 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위험의 외주화는 3년 전부터 국민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지난 30년 동안 개념조차 없었던 문제의 해결책이 이번 산안법 전면 개정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원인으로는 노사 담합이 꼽힌다. 원청은 회사 소속 근로자에게 굳이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협상에 나서기 위한 카드로 위험의 외주화를 내세운다. 노조 역시 자신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문제를 거론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원청이 꺼리는 일은 하청이 떠맡는 구조가 자연스레 정착된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는 안전과 관련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구조 속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 안전과 관련한 외주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외면할 필요가 없다. 이 과정에서 2인 근무 체계가 1인 근무 체계로 바뀐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열악한 현실을 감내한다. 이 속에서 안전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자란다.
■하청 노동자도 법 적용
산안법을 떠받쳤던 ‘계약’ 관계의 프레임이 이번 법 개정으로 힘을 잃었다. 원청 소속 노동자와 하청 소속 노동자의 관계가 명시된 기존 법체계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모두 산안법 적용을 받는다. 특히 사고의 책임은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제어할 수 있는 당사자가 부담한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는 원청 또는 하청 소속 노동자와 관계없이 보호받는다. 위험을 배제하는 것, 즉 안전사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설비를 갖추거나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도 원청 몫이다.
산안법 전면 개정으로 처벌 수준이 강화됐다. 노동자 재해 예방을 위해 사업장의 작업 장소와 시설·장비 등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권한을 원청이 지도록 했다.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장소의 범위를 현행 화재·폭발 등 22개 위험 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와 원청이 지배·관리 가능한 장소로 대폭 확대했다. 이를 위반하면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했다.
법을 위반하는 데 따른 처벌 수준도 강화됐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5년 내 2회 이상 발생하면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고, 법인에 대한 벌금형의 상한을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렸다.
도급 과정에도 변화가 따른다. 개정된 산안법은 원청이 도급 계약을 할 때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이 적정한지를 따지도록 했다. 영세한 사업자의 사업 참여는 막힌다. 하청이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계약 구조도 변할 것이다. 만약 원청보다 하청이 안전과 관련한 전문성을 갖췄다면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책임은 하청에 있다.
법에서 정한 ‘근로자’는 개정 법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바뀌었다. 산업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셈이다. 이를테면 음식 배달을 기반으로 한 IT 플랫폼 사업자가 새로 생기면서 배달원의 안전사고를 누가 책임질지도 이번 개정안에 담았다. 이외에도 프랜차이즈 종사자 등 서비스 직종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권혁 교수는 “기존 산안법은 엔지니어링 중심이었다”며 “만약 공장 사다리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사다리에 관한 시행령이 생기는 등 법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낡은 법이다. 법 개정으로 새로운 체계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민건태 기자
※ 공동기획: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