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논에 볍씨를 뿌렸는데 큰 가뭄이 들면 가을에 농부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수 있다. 사회적 보장이 발달하지 않은 근대 이전에는 이런 사태를 겪으면 농부는 손해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 위태로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장기적인 날씨 예측은 쉽지 않다.
만약 넉넉한 자본을 가진 상인이 봄에 농부에게 가을에 수확할 쌀을 1000만 원에 사겠다고 제안했다고 생각해 보자. 농부는 풍년이 들어 더 큰 돈을 벌 욕심과 흉년으로 굶게 될 두려움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농부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 해 가을의 작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풍년이라면 상인은 지불한 돈에 비해 큰 이익을 보게 되지만 농부는 배가 아플 것이다. 반대로 흉년이 들면 농부는 가슴을 쓸어 내리겠지만 상인은 농부가 볼 손해를 대신 뒤집어 쓴 꼴이 된다. 이처럼 특정 자산을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에 사거나 파는 것이 선물 거래다. 선도 선물 또는 옵션 같은 파생상품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파생상품은 자산을 불리는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생형 금융상품인 ELS(주가연계증권) 또는 DLS(파생결합증권)가 중위험·중수익 추구를 표방하며 엄청난 기세로 몸집을 불려왔다. 올해 상반기에만 ELS와 DLS의 발행액은 각각 47조 원과 15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 최근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와 연계된 DLS 가입자가 원금을 거의 전부 잃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뉴스를 보면서 금융상품의 본질과 특성을 잘 이해하고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먼저 이번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파생상품은 결코 중위험 상품이라고 할 수 없다. 역사상 증시 낙폭이 가장 큰 시기 중 하나인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주식형펀드 가입자는 원금의 절반가량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ELS나 DLS는 사고가 터지면 가입자가 원금 대부분을 잃는 것을 보게 된다. 일반적인 주식 투자는 손실이 생겼을 때 매도하지 않고 가격 상승을 기다릴 수 있지만 파생상품 투자는 만기가 되면 손실을 보고도 무조건 상환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주식시장과 달리 파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반대편에서는 반드시 그 만큼의 손해를 보게 되는데 수수료마저 있어 시장 참여자의 평균수익률은 결국 마이너스가 된다. 제로섬 게임의 참여자는 누구나 상대방이 자신보다 좀 더 어리석기를 바라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파생형 금융 상품에 투자할 때는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