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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강소기업 도시로 <8> 가로막힌 중소기업 연구개발

전략 지원 전무, 대기업은 외면…R&D벽에 막혀 지역 중기 좌절

  • 민건태 기자
  •  |   입력 : 2019-10-31 18:45:22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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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의 정부 소속 평가위원에
- 중소기업 R&D 과제 평가 쏠려
- 현장 반영 안된채 연구하고 끝

- 몸집 불리는데 연연한 부산TP
- 전략 사업 발굴 등 제 역할 의문
- 대기업은 하청 기술 개발에 인색
- 시 차원서 판로 개척 지원 절실

중소기업은 연구·개발(R&D)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연구·개발은 통상 정부 출연 연구원과 대학과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또는 기업 간 협업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소외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학과 연구기관 또는 대기업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지 오래”라며 “규모가 작아 연구·개발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보다 연구·개발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가 중소기업 경쟁력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지역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제조업이 밀집한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 전경. 국제신문 DB
■성과 치우친 연구기관

더불어민주당 최인호(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중소기업 연구·개발 평가위원 4519명 중 연간 5회 이상 평가에 참여한 위원 887명이 전체 과제의 61.4% 수준인 9522건을 평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평가위원의 20%에 연구·개발 과제 평가가 집중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 연구·개발 시스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부산과학기술혁신원 김병진 원장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며 “기술을 평가하는 정부 기관 소속 관리자가 연간 5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등 업무 편중이 매우 심하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40년 동안 부산에서 사업을 일군 원로 기업인도 연구기관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역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연구원은 연구 결과를 발표만 하면 업무가 사실상 마무리된다. 연구 성과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아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원에서 무슨 연구가 이뤄지는 지 알 방도가 없다”며 “결국 해외에서 발간된 연구 논문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중”이라고 꼬집었다.

■현장 외면한 지역 산업전략

   
연구기관의 범주에는 벗어났지만, 지역 산업계 전반에서는 부산테크노파크가 그동안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익 사업에 치중하는 동안,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지역 전략산업에 관한 밑그림과 지원책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부산테크노파크의 경영 실적은 이같은 비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부산시의회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부산테크노파크의 핵심 수입원인 ‘장비 사용료’가 2015년 35억8400만 원에서 2019년 26억2200만 원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장비 사용료는 부산테크노파크가 보유한 성능·시험 인증용 장비다. 오히려 조직은 더욱 방대해졌다. 2015년 2단·1본부·2실 체제에서 올해 7단·3실로 규모가 커졌다.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성과 중심 운영 체제가 조직 규모를 부풀리고, 무분별한 장비 도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부산시 공공기관 통폐합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한 부산시의회 정종민(기획행정위원회) 의원은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지원해야 할 산업에 관한 면밀한 분석 없이 규모만 방대해졌다”며 “특정 국회의원이 예산을 따면 해당 지역에 센터를 건립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했는데, 결국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산업 전략 수립은 뒷전으로 밀린 채 조직의 결속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산업계의 비판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역 IT업체 B사 대표는 “20억 원 규모의 정부 R&D 과제를 따내려고 준비하던 중에 부산테크노파크 직원으로부터 (우리 회사 규모 정도면) 2000만 원짜리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들었다”며 “부산테크노파크의 지적과 달리 큰 과제를 따는 데 성공하면서, 지원 기관의 전문성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대기업 상생도 중요

기술을 고도화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내놓은 중소기업이 대기업 판로를 열기란 쉽지 않다. 이른바 ‘트랙 레코드’의 함정으로, 납품 실적과 기업의 규모가 입찰 과정에서 기술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조선기자재업계는 최근 현대중공업의 수직 계열화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사업을 쪼개면서 대기업의 사업 영역이 기존 조선기자재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국내 대형 조선사는 조선기자재의 기술 영역으로 꼽히던 선박평형수 처리장치와 스크러버 개발에 나선 바 있다. 지역 조선기자재업체 C사 관계자는 “최근 입찰 여건이 더욱 강도 높은 ‘단가 후려치기’ 현상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라며 “입찰 정보를 경쟁사가 고스란히 알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다음 입찰에서 저가 수주를 얻으려는 대기업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해외 브랜드와의 거래선을 찾지 못한 자동차 부품업계 역시 완성차 업계의 고질적인 거래 관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에 들어가는 원재료 조달 비용이 낱낱이 원청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원가 경쟁력 확보라는 가격 정책에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지역 자동차 부품업계는 “하청업체는 품질 기준만 충족하면 될 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는 대기업이 매우 인색하다”며 “수출선을 확보한 기업은 그나마 연구·개발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지만, 국내 대기업에 온전히 납품하는 업체 입장에선 연구·개발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지역 산업계 전문가는 “생산 효율에 방점을 찍은 대기업의 경영 구조가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외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며 “특히 최근 신기술로 무장한 창업 기업이 해외로 먼저 눈을 돌리는 사례가 많으므로, 고도화된 기술의 판로를 열어주는 제도적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건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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