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프라가 균형적으로 갖춰지면서 지역마다 특색 있는 기업들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 경남과 울산에서 지역성을 살린 작지만 강한 기업과 전통을 지닌 장수기업 등 지역 기업과 함께 농·어업을 아우른 지역 경제의 최전선을 찾아간다.
- 글로벌 양주회사 15년 다닌
- 주류인 조이덕 대표의 ‘유턴’
- 제대로 된 ‘우리 술’ 집념으로
- 3년간 전국 전통주 명인 찾아
- 노하우 배운 뒤 고향서 사업
- 100번 씻은 한림면 고급쌀로
- 인공감미료 없이 33일 숙성
- “가야의 혼 담긴 프리미엄 명주
- 가격 비싸도 승산 있다고 봐”
고된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과 서민의 허기를 달래주던 막걸리. 1837년 고서 ‘양주방’은 쌀과 누룩으로 빚은 뒤 청주를 떠내지 않고 걸러낸 술로 정의한다. 그래서 탁주(濁酒)다. 2000년대 초반 건강 술로 알려지면서 생산 붐이 일었지만 인기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막걸리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접목되면서 누룩 냄새 나는 저가 술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명품 술로 변신 중이다. 병당 10만 원대의 프리미엄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최근 김해시 한림면에 문을 연 가야양조장의 ‘가야 프리미엄 막걸리’도 명품 막걸리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양주회사에 근무하다 귀향한 조이덕(50) 대표의 ‘우리 술’에 대한 집념과 손맛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 대표는 “막걸리도 유럽의 고급 와인처럼 명주로 대우받을 때가 왔다”고 역설한다. 2000년 전 가야의 혼을 담은 명주를 만들겠다는 그의 야심은 현재진행형이다.
■손맛 되살려 명품 바라보는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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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양조장 조이덕 대표가 대표 상품인 ‘가야’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연말 경남 김해시 한림면의 가야양조장을 찾았다. 공장 문을 열자 누룩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실내에 머무는 동안 강렬한 냄새가 온 몸에 배는 듯하다.
쌀을 수증기에 찌는 증자실. 50대 여직원이 대야에 담긴 쌀을 손으로 씻느라 여념이 없다. 쌀을 씻는 세미(洗米) 작업이다. 단백질 덩어리인 쌀뜨물을 씻어내기 위해 무려 100차례나 반복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뜨물 제거는 술맛을 좋게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바깥에는 삭풍이 불지만 힘든 작업 때문인지 여직원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조 대표는 100% 김해산 쌀로 만든 막걸리를 표방하며 지난해 11월 가야양조장의 문을 열었다. 앞서 다니던 회사를 나온 지 6년 만에 그는 프리미엄 막걸리 ‘가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정부가 막걸리 공장 규제를 완화하면서 제2의 막걸리 붐이 이는 호재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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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막걸리 제조과정- 가야막걸리의 제조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왼쪽 사진부터 1~4. 제일 처음 쌀을 수증기에 찌기 전 증자실에서 쌀을 씻는다(1). 밑술을 만들기 전 햇볕에 말린 누룩을 손질한다(2). 이어 밑술과 덧술을 혼합해 치댄다(3). 마지막으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33일 숙성한다(4). |
■글로벌 양주회사 몸담은 주류인
부모님이 김해 한림면에서 농사를 짓는 조 대표는 지역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2000년 무렵 상경해 미국 위스키인 잭 다니엘스를 유통하는 ㈜한국브라운포맨에 입사한다. 조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글로벌 주류회사에 입사해 도매상, 호텔 등 거래처를 관리하며 주류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고 전했다.
간부 자리에도 올랐지만 늘 마음에 차는 ‘우리 술’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즈음 친척인 제이케이크래프트 조태영(39) 대표가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서 막걸리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터 그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그는 2014년 퇴사 후 소믈리에이기도 한 조태영 대표로부터 막걸리 제조법을 익혔다. 이 회사에서 제조한 ‘동래아들’이 4000원, ‘기다림’이 1만2000원이라는 고가에 판매되는 걸 보고 우리 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의 전통주 명인을 찾아 다니며 배움을 청했다. 마케팅은 자신이 있었기에 술맛만 제대로 낸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귀중한 시간이었다. 술맛은 좋은데 판매가 잘 되지 않거나, 전통 양조장 업계에 젊은 사람이 없는 점도 확인했다”면서 “결정적 단점은 젊은 층의 트렌드를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때 얻은 결론은 ‘전통 제조 기법을 고수하면서 젊은 층의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고향 마을에 제조공장을 짓다
고향에 막걸리 공장을 짓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두 손 들어 말렸다. “왜 돈도 안 되는 막걸리 사업을 하려느냐”는 불호령을 듣기도 했다.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2019년 6월 고향인 한림면에 있는 공장을 인수해 지난해 7월 주류 제조 인허가를 받았다.
그는 “경남도로부터 받은 주류 허가 조건이 ‘100% 김해 쌀과 재료를 사용할 것’이었다. 부모님이 재배한 쌀과 한림면의 쌀을 사용 중이며 앞으로 김해평야 전역에서 생산된 쌀을 사용할 예정”이라며 “일조량이 좋은 곳에서 생산된 최고의 쌀이라 최상급 막걸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출시된 브랜드 ‘가야’는 2000년 전 가야인의 꿈을 담았다. 청색이 도는 전면 라벨은 가야의 철기 문명을, 후면의 황토색은 김해평야를 각각 상징한다. 현재 하루 200병을 생산하는데 판매망을 늘려 하루 3000병 정도 생산할 계획이다. 그는 “가야는 오로지 수작업으로 제조한다. 일반 막걸리 숙성기간이 1~3일이지만 가야는 33일로 길다. 여기다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아 숙취도 없다. 우유 느낌의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젊은 층을 겨냥했다”고 말했다. 시중 막걸리는 병당 2000원 선이지만 가야는 갑절인 4000원이다. 현재 롯데스카이힐스 김해CC에 공급하는 등 판매망을 늘리고 있으며 앞으로 10만 원대의 고가 막걸리도 개발할 예정이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