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계획 단계부터 여론수렴 없어
- 공론화 요구에 재검토위 발족했지만
- 정부 일방통행에 파행·요식적 회의만
- “의견 충분히 들었다” 원안 밀어붙여
정부가 27일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의결하면서 부산 울산을 비롯한 전국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특히 탈핵·환경·시민단체와 정치권, 원전지역 주민은 정부가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격노하는 분위기다. 최소 10만 년을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 관련 정책을 불과 20일 만에 졸속으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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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회원들이 2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대한 심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제공 |
■산업부, 재검토위 파행 그대로 답습
2차 기본계획 수립의 출발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박근혜 정부 때 수립된 1차 기본계획이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작성됐다’는 시민사회의 지적을 받아들여 사용후핵연료 관리·처분 정책을 다시 논의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그 즉시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2019년 5월 산업부 산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가 발족하며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2020년 6월 정정화 당시 재검토위원장이 중도 사퇴하면서 파행을 빚었다.
당시 정 위원장은 “산업부가 판을 잘못 짜 제대로 된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 관계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정 위원장의 지적이었다. 하지만 산업부는 위원장만 다른 인사로 교체해 위원회 활동을 이어갔고, 올해 3월 말 재검토위는 산업부에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 ▷영구처분시설 확보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산업부는 해당 권고를 토대로 2차 기본계획의 초안을 지난 7일 마련한 뒤 행정예고(12월 7~21일)를 거쳐 이날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는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과 요식행위 수준의 토론회만 열어 놓고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17일 부산 울산 등 원전지역 주민이나 시민단체·지자체 관계자를 모두 배제한 채 언론에 알리지 않고 ‘기습 토론회’를 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재검토위까지 발족한 산업부가 과거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2차 계획이 의결된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전문가 워킹그룹과 이해 관계자 간담회, 행정예고, 관련 학회 간담회, 토론회 등을 거쳐 2차 기본계획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애초부터 의견 수렴 의지 없어”
2차 계획이 확정되면서 고리원전 등의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시설이 마련되기 전까지 최소 20년 간 원전 부지 내에 보관하는 게 의무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까지 입법화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2차 계획의 정당성이 더욱 더 확고해지는 셈이다. 고준위 특별법에도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을 합법화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의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국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는 이날 원자력진흥위원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부는 애초부터 이해 당사자나 시민사회 등 국민 의견을 반영할 뜻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2차 계획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도 “핵발전소 부지에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신규로 설치하겠다는 것”이라며 “(1980년대 이후) 40년간 정부가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을 핵발전소 지역에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지역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 울산 전남 전북으로 구성된 원전 소재 광역단체 행정협의회도 이날 산업부에 보낸 공동 건의서에서 2차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부산 연제구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졸속·엉터리로 수립하는 것은 원전 지역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큰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라고 정부와 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