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전 부지 내 핵폐기물 저장을 명문화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수정·보완 없이 그대로 확정해 파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부산 울산을 비롯한 원전 지자체와 정치권 등의 재설계 요구를 철저히 외면한 것으로, 졸속·재탕 논란에 휩싸인 기본계획 자체는 물론 일방적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내용으로 입법을 추진 중인 여당을 향해서도 비난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
정부는 27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고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등 3개 안건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고준위 기본계획은 사용후핵연료 등 핵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 로드맵이다. 이번 2차 계획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초안 공개와 행정예고를 동시에 시작한 지난 7일 이후 불과 20일 만에 의결 절차까지 모두 마치게 됐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이 매우 강한(고준위) 핵폐기물을 말한다.
2차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면 원전지역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의 거센 반발에도 수정되거나 변경되지 않은 채 초안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해 고리원전 등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제3의 지역에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이 건립될 때까지 원전 부지 내에 그대로 묻히게 된다.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한 이후 20년 이내에 중간저장시설을 마련하고, 37년 내에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게 산업부의 계획이다. 산업부는 “중간저장시설이 운영되면 (원전 부지 내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지체 없이 반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소 20년 동안 원전 부지 내에 저장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산업부의 이런 계획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5년 전 박근혜 정부 때 마련된 1차 기본계획에서도 해당 기한은 ‘향후 36년’으로 제시됐지만, 지금까지 영구처분시설 확보는커녕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조차 못 하고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정수희 활동가는 “2차 계획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4명이 공동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과 마찬가지로 핵발전소(원전) 지역을 핵폐기장으로 만드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2차 계획에 담긴 ‘독소 조항(원전 부지 내 저장)’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을 놓고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산업부는 행정예고 기간이었던 지난 17일 원전지역 주민 등 이해 당사자를 철저히 배제한 채 ‘밀실 토론회’를 열어 물의를 빚었다. 그 이후 추가 공청회도 열지 않았고, 각계의 재검토 요구에도 초안 변경 없이 2차 계획을 확정했다. 이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