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엑스포 참가사에서 꼭 기억할 인물이 있다. 1893년 시카고박람회 참가단장 역할을 한 정경원(鄭敬源, 1851~98·사진). 그는 1893년 3월 시카고박람회에 참석할 것을 명한 고종의 칙지를 받았다. 직책은 미국전람회 출품사무대원. 이역만리 미국 땅, 서양문물이 총집결하는 박람회에 나라를 대표해 참가하는 특별한 책무였다. 정경원은 189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지낸 정3품 참의내무부사였다. 지금으로 치면 행정자치부 실장에 해당하는 당상관이다.
그는 사무원, 통역원, 악공 등 12명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가 박람회 업무를 총괄했다. 이승수 대리공사 등 주미 조선공사 관원들이 그의 지휘 아래 실무에 투입됐다. 그는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면담하고, 시카고 시내 호텔에서 각국 외교사절 100여 명을 초청해 연회를 여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박람회에 관해 기록을 상세하게 남겼다. ‘박물회약기(博物會略記)’라 불리는 이 문서는 박람회 개최 결정 과정부터 모금, 운영 조직, 박람회장 구성 등 행정뿐만 아니라 건축물, 출품국, 전시물 내용, 관람객 현황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규모 국제행사 경험이 없는 관헌의 보고서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한 기록이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 말이지만 엘리트 관료의 만만찮은 실력과 내공이 엿보인다. 그해 12월 귀국한 정경원이 고종에게 박람회 업무를 복명한 내용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다.
그는 관리로서 구한말 격랑을 고스란히 겪었다. 박람회 공적을 인정받아 이조참판에 제수된 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민심을 달래는 선무사로 파견됐고, 갑오개혁 이후 설치된 군국기무처 회의원을 거쳐 평양부관찰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