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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0> 적조연구 전문가 김학균 박사

황토 살포 ‘적조 치료법’ 개발…어민 터전 지켜낸 바다 의사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5-23 19:38:30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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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여행서 접한 바다에 매료
- 수산대 졸업 후 수산사무관 근무
- 적조 연구 60편 논문·5건 특허

- 1995년 적조 피해 속출 경남도
- 김 박사 말대로 황토 뿌려 효과
- 냉소적이던 외국도 속속 도입
- 생태계 유해설 치열한 논쟁도

- “유해적조 관리체계 구축됐지만
- 현장 관리 인력 부족 해결 과제”

적조(赤潮)는 ‘바다의 병’이다. ‘바다 의사’ 김학균(73) 박사의 진단은 명쾌했다. “병인(病因)은 육지로부터의 오염이다.” 그는 특히 식용유와 세제 등 생활오염원과 산업폐수 및 축산폐수 배출, 매립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오염물질 유입을 줄이고 오염해역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도 건강할 수 있다.” 그 처방은 바다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염려였다.
김학균 박사가 국립수산과학원 적조상황실을 방문해 적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정하 교수 제공
적조는 바닷물의 부(富)영양화로 플랑크톤이 비정상적으로 대량 번식해 바다가 붉게 보이는 현상이다. 그 플랑크톤이 산소를 다량 소비하면 다른 생물의 호흡 장애를 유발하거나 점액질 플랑크톤이 아가미에 붙어 고기를 폐사시킨다. 또 편모조류인 코클루디니움과 짐노지움이 독성으로 어패류를 집단 폐사시키며, 일부 적조생물은 마비와 기억 상실, 설사를 일으키는 독소를 내뿜기도 한다.

고유어로 ‘구즛물’이라 불린 적조는 연원이 깊다. 구약의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지팡이가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는 대목, 삼국사기의 “동해 물이 붉게 변하고 고기와 거북이 죽었다”는 기록에 이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유사한 내용이 전해진다. 현대에 들어와 한국에서 발생한 적조는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된 1978년 진해만에서 나타난 것이 최초였다.

■관측 헬기 엔진 화재로 비상착륙

적조가 발생한 남해안 양식장 인근에서 국립수산과학원의 기술지침에 따라 선박이 황토를 살포하는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적조 징후가 나타나면 국립수산진흥원(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진은 휴일을 반납하고 비상근무를 시작해 전국에서 전해오는 정보를 검토했다. 현장에서의 예찰(豫察)과 예측을 토대로 ‘적조 발생’을 확인하면 즉시 주의보, 경보를 발령하고 어민에게 양식장과 어장에서 철수를 권했다. 일단 적조가 발생하면 어민은 얼굴이 흙빛이 된 채 초점 잃은 눈으로 하늘만 쳐다보았다.

이를 목도한 김학균 박사는 적조와의 싸움에서 물러날 수 없었다. 수시로 현장에 나가 조사와 관측에 나섰고, 그러다 1996년엔 헬기를 타고 공중 관측을 하던 중 엔진 화재로 비상착륙을 하고야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그 무렵 신입 연구원으로 관측선을 타고 먼바다에 나가곤 했던 국립수산과학원 임월애 박사의 고생도 그에 못지않았다. “제주도에서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까지 나가 시료를 채취하다 풍랑을 만나 중국해를 표류한 적도 있었다. 휴일도 밤낮도 없으니 아이들에겐 매정한 엄마였다. 하지만 어민을 살린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기왕에도 김학균은 초년고생에 단련된 터였다. 1949년 전남 광산군(현 광주시 광산구)에서 김희주와 정윤순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장 멀리서 살아 “촌놈”이란 놀림을 받았지만 장남을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의 욕구는 컸다. 그에 부응해 어린 김학균도 의사와 외교관이 되려는 꿈을 품었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수학여행지 여수에서 처음 바닷물을 맛보고 신기해하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군산수산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바다와 가까워졌다.

“바다에 미래가 있다”는 말에 1968년 부산수산대학교 증식학과(현 부경대학교 수산생명과학부)에 입학했지만, 문제는 가난이었다. 자신과 동생들의 학비에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봉투 접기부터 신문 배달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고 라면만 끓여 먹다 알레르기 피부염도 앓았다. 감연히 운명에 맞선 그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 월남 파병을 자원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사선을 넘나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1976년 국립수산진흥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하루 3시간씩 자가며 공부한 끝에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해 수산사무관(수산 기좌)이 되었다. 3년 후인 1979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현지 기술연수 기회를 얻었지만, 이번엔 항공료가 없었다. 어렵사리 ‘입양아 돌보미’로 비행기를 얻어 타고 찾아간 프랑스 낭트에서 2년간 연수받으며 렌느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수산진흥원에 복직한 그는 연구진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해양자원부 환경과에서 수산연구관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1988년 부산수대 대학원 자원생물학과에서 한국 최초의 적조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본격적으로 적조 연구에 매달려 10권의 저서와 60편의 논문을 쓰고 5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정신분석학자 C. G. 융의 말대로 ‘공동체의 운명을 감당할 능력을 얻기 위해 감내하고 이겨낸 시련들’이었다.

■적조 퇴치에 황토 도입

2012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15차 국제적조회의가 끝난 뒤 외국에서 온 학자들이 황토 살포 시연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김학균 박사 제공
드디어 김학균 박사가 감당해야 할 위기가 닥쳐왔다. 1995년 대규모 적조의 내습으로 어민의 피해가 속출하자 경상남도는 김 박사의 연구를 근거로 거제도 동안에서 황토 살포에 나섰다. 과연 구하기 쉽고 바다에 미치는 영향도 적은 황토는 적조 퇴치 효과를 확연하게 드러냈다. 이후로 매년 적조가 엄습하면 수산진흥원의 엄격한 기술지침에 따라 황토 살포가 행해졌다. 처음엔 “자연재해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라 냉소하던 외국도 차차 이를 따라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국제무대에서 김 박사를 부르는 별명은 ‘황토 박사(Dr. Clay)’가 되었다. 그러자 한편에선 “황토 살포가 바다의 저서생물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김 박사는 이에 맞서 치열한 논쟁을 벌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판단도 떠맡아야 했다. 1995년 여수에서 발생한 적조로 764억 원의 피해액이 발생하자 피해 어민은 달포 전의 유조선 좌초로 인한 기름과 유(油)처리제와 적조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김 박사는 어민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적조와 무관하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시스템 구축에도 현장 인력 부족

다행히 이를 계기로 정부는 적조 퇴치에 거액의 예산을 지원하는 한편 해양수산부를 신설했으며, 수산진흥원에 적조연구부를 설치해 해양오염과 유해적조를 관리할 국가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수산진흥원은 실시간 무인관측시스템에 의한 위성감시와 항공감시 등 광역관측 모니터링과 시뮬레이션과 더불어 첨단기자재를 활용한 적조화상고속통신망으로 적조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연구팀은 황토와 음극수를 섞어서 뿌리는 고효율살포기와 가두리양식장용 자동경보시스템, 비상가동시스템 등을 속속 개발했다. 임월애 박사에 따르면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를 접목한 대응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한다. 하지만 많은 해양환경 전문가는 최근 비상가동시스템에 우려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적조의 발생 빈도가 다소 뜸해졌다지만 적조 전문 연구자가 소수에 불과하고 현장 지도를 담당할 인력이 전무한 점은 못내 걱정스럽다.”

김학균 박사는 2005년 남해수산연구소장을 끝으로 31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퇴임 전후 그는 APEC 해양환경적조계획조정위원, 교토대 객원교수, 부경대 초빙교수 등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그는 2012년 경상남도가 ‘인간과 적조’를 주제로 개최한 제15차 국제적조회의를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그 참에 시연해 보인 황토 살포로 참석자에게 손뼉을 받았다. 그 공로와 연구업적으로 김 박사는 2019년 국제적조학회에서 ‘국제 해양적조 공로과학자(Trail - Blazer of HAB)’로 선정됐다. ‘바다 의사’이자 국제적 학자로 활동해온 김학균 박사는 의사와 외교관이란 어린 시절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2008년 ‘모던 포엠’을 통해 등단한 김 박사는 이미 두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다. 얼핏 보기엔 생소한 과학자의 월경(越境)이지만, 평생 ‘바다의 병’을 고쳐온 그이고 보면 문학을 통한 ‘삶의 치유’ 역시 그럼직하다. 아마도 그는 그런 넘나듦을 바다에서 배웠을 법하다.

▶도움말씀 주신 분 = 김지회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기획부장, 임월애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관, 고성철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이창규 수산학박사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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