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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1> 한국 유일 범선 선장 정채호

요트 불모지 한국 개척자 … ‘범선 붐’ 일으킬 돛도 활짝 폈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6-06 19:46:46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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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한일요트교류 참가 계기
- 딩기요트 50척 구매 … 선수 육성
- 37년간 국내외 대회 수상 휩쓸고
- 국가대표 지도자 등 줄줄이 배출

- 1994년 ‘코리아나호’ 진수시켜
- 러·중·일 등 세계 각국 해안 누벼
- 여수국제범선축제 2년마다 개최

- “범선 한척 없는 해양기관 아쉬워
- 규제 줄이고 범선 선장 육성해야”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만에 정박 중인 코리아나호에서의 정채호 선장. 김정하 교수 제공
■국내 유일 범선 ‘코리아나호’

“춥다 덥다 불평해선 안 된다. 왜 속도가 느리냐고 물어서도 안 된다. 대자연에 자신을 맡기고 겸허해야 한다.” 국내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호 정채호(73) 선장의 주문이다. 선실에 붙은 승선 수칙도 ‘운항 협조’, ‘각자 침구 정리’, ‘운항 중 금주’ 등 까다롭다. 그래야 도리어 바다에 나가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83년 네덜란드에서 건조된 코리아나호는 길이 41m, 총톤수 135t에 기관과 돛을 갖춘 마스트(돛을 달기 위해 배 바닥에 세운 기둥) 높이 30m의 크루즈 범선(tall ship)이다. 돛 11개를 모두 펼치면 931㎡, 300평짜리 논 한 마지기 넓이가 된다. 평소 9, 10노트의 속력으로 달리다 맨 앞의 제노아 돛 하나만 펼쳐도 2노트나 빨라진다. 선내에는 72명의 숙박이 가능한 살롱 아카데미 룸이 갖춰져 있다. 배 밑바닥엔 킬(keel)이라 부르는 납 280t이 들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 요트 붐 불러일으켜

정채호 선장과 요트의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에 시작되었지만 결정적 계기는 여수대학교 강사로 일하던 1982년 여수시와 일본 가라쓰시의 한일 요트교류사업 참가였다. 전국 중고생 15명을 선발해 대회에 참가한 그는 몇몇 학생에게서 요트선수 자질을 발견했고, 한국에서도 ‘요트 붐’을 불러일으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재를 털어 단계적으로 50척의 딩기 요트를 구입하고 훈련생을 모집해 전지훈련에 나선 그는 이듬해 전남도민체육대회에 전남도지사와 여수시장 앞에서 근사한 시범경기를 펼쳐 보였다. 때마침 1986년 아시안게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요트 불모지’였다. 정 선장은 1985년 전남요트협회장을 맡아 이후 37년간 전국체전 종합우승 17회와 준우승 4회, 대통령기전국시도대항요트대회 종합우승 16회와 준우승 5회의 성적을 거뒀다. 그와 더불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와 국가대표 코치를 줄줄이 배출하는 등 요트지도자를 육성해 전국 시·도로 내보냈다.

정 선장의 요트에 대한 애착은 그가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정철 장군의 후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남 여수시 여서동에서 해조류 가공회사 삼해해조 운영자인 정한석과 강봉인 사이에서 태어난 정채호의 어린 시절은 다복했다. 모든 운동에 능한 그였지만 가업을 잇고자 여수수산고등전문학교(현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를 거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미국 뉴저지주에서 A.D.E.과정을 수료했다. 1980년 ㈜삼해를 세워 1000만 달러 무역 실적을 올렸고 고려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로 일했다. 1995년부터는 여천시 초대 민선시장으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에 힘을 보탰으며 퇴임 후에도 여수시정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전라좌수영성역화 추진위원장과 한국거북선연구소장을 맡아 ‘호좌수영지’ 번역사업과 전라좌수영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돛을 펼치고 정박 중인 코리아나호. 전두성 항해사 제공
■여수국제범선축제추진위원장 맡아 2년마다 개최

정 선장이 가장 애정을 쏟은 대상은 역시 요트였다. 1994년 부산에서 구입한 크루즈 요트에 ‘코리아나호’란 이름을 붙여 진수시키면서 본격적 요트 보급에 나서 코리아요트스쿨 교장을 비롯해 한국‘노’진흥연구소장, 국제원양요트학교장, 대한요트협회 원양세일링위원장, ㈔한국범선협회 이사장과 회장을 두루 맡았다. 2002년부터는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여수국제범선축제 추진위원장을 맡아 러시아 대형범선 팔라다호와 나제즈다호를 비롯해 일본 아미호, 인도네시아 비마수지호, 그리고 뉴질랜드 등의 중소형 범선을 참가시켰다. 매회 20만 명에서 3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 이 행사에서는 범장(帆裝) 전시, 야간 점등(點燈), 선원들이 마스트 위에서 펼치는 ‘돛대 세레머니’가 장관이었다.

하지만 정채호 선장은 볼거리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듬직하고 넉넉한 품성으로 ‘요트계의 대부’ ‘앨버트로스’라 불리는 그답게 몸소 항해에 뛰어들었다. 그러노라니 때로는 돛이 찢어지고 스크류가 고장 나는 일이 다반사였고, 10년 전에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회항하던 중 역풍을 만나 3일 밤낮을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와의 동승을 경험한 오마이뉴스 오문수 기자의 회고는 자못 감동적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새벽 3시, 다른 선원들은 지쳐 잠이 든 시각에도 그는 몰아치는 비바람과 싸우며 꿋꿋이 키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정 선장은 중국 웨이하이와 칭다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도쿄 오키나와 가고시마 쓰시마 구간을 오갔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개최되는 국제범선축제에 초대를 받아 2002년부터 19회나 연속적으로 참가했다. 평소 최선을 다하는 훈련을 강조해온 코리아나호는 2018년 ‘동방경제포럼’ 부대행사 ‘극동세계범선대회’에서는 러시아와 일본, 인도네시아 범선 8척과 겨뤄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여수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000㎞ 구간을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만 달리는 레이스였다.

물론 범선 항해는 선장 혼자 할 수 없다. 마스트에 돛을 달고 끌어내리는 일만도 승선원 수십 명이 매달려야 한다. 코리아나호는 일반인도 이용하기 쉽게 선실을 개조해 자원봉사자 40여 명을 번갈아 태우면서 매년 60일씩 운항해왔다. 주요 멤버는 등산가에서 항해사·기관사로 변신한 전두성과 손칠규를 비롯해 이사부기념사업회 회원, 해군특수전전단전우회 회원, 중학생과 초·중등교원 등이었다. 그렇게 ‘이사부 항로탐사’와 ‘왕인박사 일본뱃길탐험’, ‘이순신 장군 초도순시길 역사 체험’, ‘삼별초 뱃길 탐험’ 등의 행사를 전개해왔다. 운항 중에는 궁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의 ‘동아시아 해상교류사’, 안동립 독도 연구가이자 동아지도 대표의 ‘독도지명과 해식동굴 해설’, 이효웅 이사부기념사업회 해양탐험가의 ‘선인(先人)들의 독도 인식’ 등의 선상 강의도 펼쳤다.

■한국인의 해양 DNA 되살리자

한국은 세계 조선 1위, 해운 6위에 요트 3000척과 파워 보트 1만 척을 보유한 나라다. 해양 전문가는 그럼에도 아직 해양수산 관련 기관이 범선 한 척도 가지지 못한 점을 아쉬워한다. “해기사 양성기관에서 범선으로 운항 훈련을 시킨다면 훈련생들이 파도와 바람, 해류를 제대로 숙지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한국인의 해양 DNA를 되살려야 해양 개척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정채호 선장과 오랜 인연을 나누어온 허일 한국해양대 명예교수의 목청 높은 주장이다. 실제로 범선은 구입이 어렵고 규제가 많은 데다 관련법이 미비해 선박 검사가 까다롭고, 유지하기에만도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28년간이나 코리아나호를 운영해온 정 선장의 끈기와 열정이 새삼 돋보이는 까닭이다.

최근 코리아나호는 먼바다로 나가기가 어렵다. 코로나 팬데믹과 어수선한 국제관계로 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여수에서 가까운 연안 항해가 고작이다. 40여 년 바다를 누벼온 정채호 선장으로선 답답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2023년 여수개항 100주년 기념 범선축제를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 주요 구간에서 범선 레이스를 펼칠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어 2024년에는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1653년 이동해 온 암스테르담에서 서귀포까지 항로를 되짚어보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에서 ‘범선 항해 붐’이 일어난다면 그 선두에서 돛을 활짝 펴고 달릴 코리아나호의 정채호 선장을 새삼스럽게 바라볼 날이 올 것이다.


▶도움말씀 주신 분 = 최영석 부선장, 전두성 항해사, 조원옥 항해사, 손칠규 기관사, 궁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안동립 동아지도 대표, 이효웅 이사부기념사업회 해양탐험가, 허일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박진수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오문수 오마이뉴스 기자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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