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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3> ‘서핑의 선구자’ 서미희

송정 파도 공부해 ‘서핑 성지’ 일궜다, 100만 동호인의 대모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7-04 19:38:37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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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드서핑 선수 출신 ‘1세대 서퍼’
- 파도 읽으려 기상학·물리학 독학
- 43세 때 국내외 대회 여성부 1위

- 송정서핑학교 열어 노하우 전수
- 국가대표 7명 배출 등 성과 거둬
- 서 대표의 제자들은 전국에 보급

- ‘수상 레스큐팀’ 운영 100명 구조
- 발리서 엘리트 선수 육성도 구상

‘서핑의 성지(聖地)’. 부산시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앞바다의 별칭이다. 26년간 이곳을 지켜온 서미희(여·56) 송정서핑학교 대표는 ‘서핑 선구자’, ‘서핑의 대모(代母)’ 외에 ‘성지 창조자’로 불린다. “송정이 본래 서핑 성지가 아니었다. 서 대표가 성지를 만든 것이다.” 해양스포츠용품을 보급하며 40년간 서 대표를 지켜본 정완섭 에어웨이브 대표의 주장이다.
2010년 인도네시아 롬복에서 서핑하는 서미희 대표 모습.   서미희 대표·김정하 교수 제공
■윈드서핑 선수 출신 여성 서퍼

‘한국 1세대 서퍼’ 서 대표는 본래 윈드서핑 선수였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처음 보고 매료된 윈드서핑을 배운 지 6년 만에 국내 여성부 1위를 10회나 차지했다. 88올림픽 윈드서핑 국가대표였던 남편과 광안리에서 올린 결혼식도 윈드서핑 방식으로 치렀다. 그런 그가 1997년부터는 송정 앞바다에서 서핑 놀이를 시작했다. ‘놀이’라는 영어단어 ‘play’에 ‘만들다’는 뜻도 있으니 놀면서 바다를 재창조한 셈이다.

어려서부터 서미희는 노는 데 선수였다. 김해 대동면에서 서문도와 정학남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그의 부친은 일꾼을 거느린 부농이었지만 농사는 뒷전이었다. 둘째 딸 서미희를 데리고 사냥 다니길 더 즐겼고 서미희 역시 초등학교 시절 산속에서 노루를 쫓다 길을 잃을 정도로 체력과 담력이 좋았다. ‘밀림의 왕자 타잔’을 동경해 모든 놀이를 섭렵한 그는 중학생이 되자 또래들의 놀이가 시시해 운동을 택했다. 구포여중에서 시작한 펜싱선수 생활을 이사벨여고까지 이어 갔지만 전망이 밝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서미희는 버는 돈 모두를 스키와 테니스, 수영 등 운동을 배우는 데 털어 넣었다.

1996년 광안리에서 시작한 윈드서핑 스쿨을 송정으로 옮기고 나니 수시로 몰려오는 바람과 파도가 골칫거리였다. 1997년 10월 어느 날도 높은 파도를 피해 바다에서 빠져나오는데 도리어 보드를 들고 들어가는 외국인이 있었다. 한국계 호주인인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파도가 오면 타러 가야지, 그 좋은 걸 왜 피하느냐?” 호된 충격을 받은 서 대표는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깨달음을 얻으면 몸으로 검증해야 직성이 풀리는 ‘국내 1호 여성 서퍼’의 탄생이었다. 과연 멋진 파도를 탄 날이면 종일 웃으며 지냈고 한밤중까지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파도 읽는 법 ‘열공’

부산 해운대구 송정서핑학교 수강생들이 백사장에서 연습하고 있는 모습.
작심하고 서핑에 달려든 서 대표는 파도를 읽기 위해 지형과 파장, 바람이 파도를 만드는 원리부터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송정 앞바다에 4계절 파도가 밀려오는 이유와 유향(流向) 파향(波向)을 분석하기 위해 해양학과 지질학 기상학 물리학을 파고들었다. 쉼 없는 훈련으로 좋은 파도를 택해 포인트를 읽고 타는 데 누구보다 빨리 익숙해졌다. 하지만 배우겠다는 수강생이 없으니 생활이 어려워졌고, 갈등이 커지자 남편과의 사이에도 금이 갔다. 더구나 ‘수상레저’ 개념조차 미비한데도 법은 까다롭고 규제는 많았다. 그런데도 턱없이 많은 보드를 쟁여놓고 서핑을 고집하는 그를 측근조차 ‘몽상가(夢想家)’라 불렀다.

그래도 서미희 대표는 뚝심 있게 서핑 보급을 밀고 나갔다. 2008년에는 급기야 일을 저질렀다. 그의 나이 43세, 주변에서 “그만 일선에서 물러나시라”고 권하던 시점이었다. 그해 7월 제주 중문에서 열린 ‘국제서핑대회’에서 그는 여성부 1위를 차지했다. 내쳐 9월 말에는 일본 후쿠오카현 가라츠에서 열린 ‘서퍼 걸 서핑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무려 2000명의 참가자가 4개 조로 나뉘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며칠을 겨룬 대회에서 서 대표는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송정서핑학교 시스템 전국에 보급

2017년 창단한 ‘서프 레스큐’ 대원들.
엄청난 에너지를 얻은 서 대표는 귀국하자마자 송정 바닷가에 건물을 짓고 ‘송정서핑학교’ 간판을 달았다. 그리곤 2009년 이후 줄기차게 쏟아져 들어오는 인터뷰를 통해 서핑을 국내에 알렸다. ‘세상 사는 이야기’란 다큐멘터리가 모 방송에 방영된 직후에는 찾아오는 강습생이 인파를 이뤘다. 개중에는 어깨를 활짝 편 70대 여성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해양레저 종목으로 떠오른 서핑 인구는 해마다 2배씩 늘어났고, 서 대표에게서 배운 제자들은 잇달아 서핑 스쿨을 열었다. 양양과 중문 등 전국에 서핑 스쿨이 생기면서 교재와 비용, 수업방식 등 송정서핑학교 운영시스템도 함께 퍼져나갔다. 호주의 유명한 해양스포츠 장비회사 ‘퀵 실버’가 송정서핑학교를 지원하겠노라 찾아오기도 했다.

“그 무렵은 대중이 야외스포츠 종목을 갈구하던 때였다. 때마침 서핑이 소개되었고 서미희 대표는 그 상징적 존재였다.” 부경대 해양스포츠학과를 나와 2002년부터 송정서핑학교 강사로 서 대표를 돕다가 독립한 민경식 서프짐 대표의 회고다. 대학에도 서핑 강좌가 개설되었고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서핑을 분석했다. “서핑은 자유를 안겨준다. 그 자유는 사람을 충전시키고 리셋(reset)한다. 맨몸으로 파도와 맞서다 보면 해방감과 자존감을 만끽하게 된다.” 과연 서 대표가 이따금 초청하는 보육원생이 서핑 체험을 마치고 나오는 얼굴에는 평소의 그늘 대신 함박웃음만이 가득했다.

■국가대표 7명 배출, 100여 명 구조

송정서핑학교 서미희 대표.
“어려서부터 나는 보물찾기에 일등이었다. 남이 못 찾는 보물도 내 눈엔 보였다.” 서 대표가 찾아낸 보물은 사람이었다. 그간 국가대표 일곱 명을 길러냈고 뱃속에서 서핑을 배운 딸 이나라와 아들 이도운에게는 걷기와 함께 파도타기를 가르쳤다. 이후 딸은 발리를 비롯한 뉴질랜드와 호주 미국에서의 전지훈련을 거쳐 2017년 이후 국가대표로 시흥체육회 소속 선수가 되었고, 같은 해 국가대표였던 아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기왕에도 백사장 쓰레기를 치우는 ‘비치 클리닝’에 열중해온 서 대표는 최근 스스로 과제를 설정했다. 오랜 기간 해양구조 방법을 연구하며 실제로 익사 위기에 처한 100여 명의 인명을 구해낸 그였다. 이미 2017년 창설, 운영해오던 ‘송정해운대 수상레저 레스큐팀’의 활동을 더욱 확대해 이를 4계절 내내 지속할 방도를 찾기로 했다. 그러자 해양경찰에서도 서핑을 활용한 구조방식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난 30여 년간 새마을문고와 초등학교 교회 동사무소를 통해 후원과 기부를 해온 송정을 위해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했다. 구민기획단과 주민자치기획단에 들어가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송정을 더 나은 명소로 만들 방도를 고민 중이며, 해운대구와 손을 잡고 서핑의 대중화를 통한 관광진흥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부산서핑협회 부회장과 한국서핑교육진흥원 회장을 맡아 유망 서퍼를 발굴해 후원하는 한편 발리에 훈련센터를 지어 엘리트 서퍼를 육성하려는 구상도 가다듬고 있다.

해양 신화는 해양 지식의 축약이다. 그리스 해신의 이름 ‘카리오레’는 파도의 흐름, ‘가라크사우레’는 돌풍, ‘토에’는 빠른 물살을 뜻한다.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이 지닌 직능은 물과 바람 파도를 조절하는 법을 일러준다. ‘립’(물결 꼭대기) ‘피크’(무너지는 파도) ‘페이스’(파도 경사면) ‘배럴’(파도 터널)을 다스려온 서 대표도 그 경지에 다가섰다. 26년 전에는 전무했던 서핑 인구를 100만 명까지 늘려놓았고, 방송이 일기예보에 ‘서핑지수’를 포함하도록 만들었다. 인공위성으로부터 받은 좌표를 분석하고 국립해양조사원의 관측기를 모니터링해 열흘 후에 송정 앞바다에 밀려올 파도를 미리 알고 있다. 그쯤 되면 “죽어 송정 바다의 수호신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반쯤은 이룬 셈이다. 바다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박성환 대동병원 이사장, 강신범 한국해양대 교수, 정완섭 에어웨이브 대표, 민경식 서프짐 대표, 김정숙 송정교회 권사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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