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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9> 포워딩 선두주자 양재생

초대형 운송 납기 엄수, 소량 화물도 소중히…포워딩(해상 운송)의 전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10-03 19:50:05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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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 눈높이 경영 29년간 실천
- 컨 1개 못 채우는 화주 공략 성장
- 300t 변압기 울산→美 2년 소요
- 추가 비용 들었지만 국제적 명성

- 녹산·양산 등에 수직계열화 구현
- 장학금·발전기금 등 사회공헌도
- 유럽 선사들, 동북아 ‘호시탐탐’
- 양 대표 노하우로 시장 수성 기대

누가 바닷길을 관리하는가. 화물 운송으로 육로, 항공로를 해로와 잇는 포워딩(forwarding) 업체다. 부산 중구 중앙동 옛 반도호텔 자리에 들어선 은산해운항공㈜이 그 선두 주자다. 이곳에서 매일 새벽 5시 반 양재생(65) 대표가 국선도와 함께 하루의 바닷길을 연다.

오늘날 4000여 개 업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한국 포워딩은 1950년대 말 선진국 업체 대리점 업무로 시작됐다. 이후 산업이 발전하면서 물류 수요는 ‘폭발’했다. 1974년 서울~부산 컨테이너 전용 열차가 달리며 복합일관수송 서비스가 시작됐다. 2년 후 해상운송 주선업 면허를 발급받은 업체들이 1991년 화물유통촉진법 제정과 함께 복합운송 주선업으로 대거 진출했다. 우연찮게 양 대표가 해운업에 뛰어든 1975년, 그리고 회사를 창업한 1993년은 그 변곡점이었다. 그에겐 시운(時運)이 따랐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꿰뚫어 본 혜안이 있었던 듯 싶다.

■고교 졸업 후 함양에서 부산으로

은산해운항공㈜ 양재생 대표가 부산 중구 중앙동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재생의 성장기는 험난했다. 경남 함양군 수동면에서 가난한 소작농 양상영과 조갑순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살 되던 해 부친의 갑작스러운 운명으로 그는 졸지에 소년가장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지게를 지느라 키가 자라지 못한 그는 출석부 번호가 언제나 ‘1번’이었다. 그나마 ‘생계유지 곤란자’로 학비를 면제받아 함양종고에서 상업을 배운 게 천행이었다.

1975년 고교를 졸업한 그와 가족은 부산으로 나와 출로를 찾았다. 8촌 형님이 운영하던 동서해운(훗날의 동남아해운) 말단으로 입사한 그는 입출항부터 선석 배치, 영업 업무를 닥치는 대로 배웠다. 하루 네 시간씩 자며 한 달의 반은 야근을 하면서도 새벽에 어머니 식당 일을 돕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녔다. 부산경상대를 거쳐 방송통신대를 마치고도 동아대에서 법학사, 경영학석사에 이어 경영대학원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동향 출신인 진병수 그로발스타해운 회장이 “한국에서 가장 부지런한 인물”이라 극찬하는 ‘산골 소년 성공담’의 전형이었다.

■‘컨’ 1개 못 채우는 중소업체 겨냥

양재생 대표가 세운 회사는 포워딩 업계의 전설이 되었다. 1993년 나이 37세에 은행대출금 3000만 원, 직원 4명으로 설립한 은산의 업무 방식은 획기적이었다. 컨테이너 하나를 모두 채우지 못하는 소량화물 운송 서비스로 중소수출입업체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주문이 밀려들며 신생기업 은산의 이름은 삽시간에 업계에 알려졌다.

■고객과 약속은 무슨 일 있어도 지켜

부산 신항만 화전에 운영 중인 컨테이너 터미널 전경. 은산해운항공 제공
양 대표가 내건 업무방침은 ‘고객 우선’이었다. “고객 만족을 위해 그들 눈높이와 마음으로 일한다. 고객의 입장과 화물을 내 것처럼 여기고, 운송에서는 어떤 난관도 해결한다. 화주가 발전해야 나도 발전한다.” 그처럼 그는 선적서류 작성부터 세관 업무, 내륙 운송 등 일괄대행 업무를 고객과의 약속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처리하느라 애썼다. 창업 초기부터 그가 고수해온 경영철학 역시 그와 일맥상통했다. “성실과 정직으로 신뢰를 쌓는다. 무엇보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한다.” 이를 이일재 ㈜부산면세점 대표는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양 대표의 태도 자체가 업무 원칙”이라는 말로 뒷받침했다. 그 언사가 예사롭지 않은 건 그가 가난을 축복으로 만들었듯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냈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울산에서 제작된 무게 700t의 초대형 선박 엔진을 바지선으로 부산항까지 옮긴 뒤 다시 벌크선에 실어 독일까지 운송했다.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 규모 장비가 투입된 그 프로젝트에서 한 치의 오차, 단 하루의 납기 지연도 벌어지지 않았다. 2010년에는 무게 300t의 대형 변압기를 울산에서 미국 뉴올리언스까지 옮기며 태평양을 건너고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올라가고도 남의 나라에서 도로까지 닦아가며 임무를 수행했다. 2년이 걸린 이 운송으로 은산은 350만 달러의 추가 비용까지 부담했지만, 대신에 일약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포워딩은 클래식·대중음악 어우러진 복합음악

소통을 강조하는 양재생 대표가 사원들과 지리산을 등반한 뒤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은산해운항공 제공
“포워딩은 복합음악이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무엇이든 연주한다. 고객이 원하면 바늘부터 중량 화물까지 무엇이든, 어디까지든 나른다.” 그처럼 잇단 기록을 축적해온 터라 ‘은을 산처럼 쌓겠다’는 회사 이름[銀山], 회사 정문에 내걸린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 된다’는 슬로건 모두가 결코 허풍스럽지 않다.

한편으로 그는 학교에 수업료를 내듯 예비된 고난도 꼬박꼬박 치렀다. 창업 초기 3, 4년간은 운영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실적이 적으니 대출이 어려운데 운임을 먼저 지불하고 사후 정산을 받자니 몇 개월씩 자금이 묶였다. 그래서 한동안 양 대표의 주요 업무는 연줄 닿는 친인척과 지인을 찾아가 돈을 빌리는 일이었다.

1997년 초엔 경기 악화를 예감한 그는 직원들 출근 시간을 1시간 30분 앞당겼다. 당연히 직원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양 대표는 꿋꿋이 버텼다. 그해 11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가 터지자 이른 시간대를 선점한 은산은 일감이 배로 늘었고 연간 매출액은 91억 원에서 22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유능한 젊은 사원들이 모여든 은산은 내부 소통이 원활하고 단결력이 강한 회사로 승승장구해왔다. 포워딩 업체로선 드물게 양산과 녹산 화전 웅동 인천 등지의 컨테이너 터미널과 녹산 양산에 수출포장 업체를 설립해 수직계열화도 구현해냈다.

그 공로로 양 대표는 석탑산업훈장과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 한국물류대상 국토해양부장관상, 대한민국 해양대상, 바다의 날 산업포장 등을 잇달아 받았다.

■모친 가르침 따라 사회 공헌

그런 업적에 더해 양 대표는 이웃 사랑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부부가 고액 기부자 클럽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늘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잘 챙겨라”고 말하던 모친이 작고하자 부의금으로 같은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함양향우회장을 오래 역임하며 고향마을에 가로등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했으며 어르신 생신 잔치를 열고 장학금을 조성했다. 한센병 환자들이 대도시를 오가며 치료받을 수 있게 봉고차도 마련해줬다. 자신이 공부한 부산경상대, 동아대, 한국해양대와 부산상공회의소 아카데미에 장학금과 발전기금을 쾌척했다.

최근 해운 전문가들은 바닷길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치솟는 수요와 고운임으로 해운업체가 전성기를 구가한 것과 반대로 수출입업체는 물류비 상승과 이송 지연으로 고전해왔다. 그런 와중에 세계 최대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프랑스 해운기업 CMA CGM이 복합물류업 진출을 준비 중이다. 동북아 물류시장에서 북극항로 개척을 놓고 서구 열강과 치러야 할 협력과 불가피한 경쟁도 큰 과제다.

한국 포워딩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9년간 양 대표가 쌓아온 이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해양대 신용존 교수는 해운업체의 복합물류업 진출에 대해 “동맥 못지않게 실핏줄이 중요하듯 물류에서 대기업만이 유리할 수는 없다. 자체 인프라와 수익 다변화로 안정적 서비스를 추구해온 은산은 고유 영역을 지킬 역량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김영득 부산항만산업총연합회 회장 역시 “특화된 영역에서 오랫동안 신뢰를 구축한 양 대표는 어떤 역경도 이겨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동북아 물류시장에서 선전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포워딩 업계에 양 대표가 버티고 있는 한 그가 열어가는 바닷길은 앞으로도 탄탄하리라는 진단이자 기대였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신용존 한국해양대 교수, 진병수 그로발스타해운·그로발스타로지스틱스 회장, 김영득 부산항만산업총연합회 회장, 이일재 ㈜부산면세점 대표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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