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주관 국정감사 모습. 왼쪽부터 황용수 원자력통제기술원장, 김석철 원자력안전기술원장,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황주호 사장이 자사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의 국정감사에서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설치하는 계획을 최대한 빨리 추진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로써 탈핵단체 등이 고리원전의 ‘핵폐기장화(化)’를 우려하며 거세게 반대하는 해당 계획은 속도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9일 한수원에 따르면 황 사장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과방위 주관 국정감사에서 “고리원전에 임시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빨리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 확보 노력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2일 취임한 황 사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취임 이후 두 달도 안 된 시점에서 탈핵단체 등이 강하게 반대하는 건식저장시설 설치 계획에 사실상 쐐기를 박은 것으로 풀이된다.

황 사장의 이번 발언은 국민의힘 하영제(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의원이 ‘고리원전 등의 사용후핵연료 포화 문제가 심각해 (지금의) 습식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계속 저장하면 원전 가동이 안 될 수도 있는 만큼 건식저장시설 설치에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에 따른 답변이다.

아울러 황 사장은 ‘고리2·3·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포화율이 90%가 넘는다’는 더불어민주당 정필모(비례대표) 의원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을 위해 (고리원전) 부지 내에 별도 설비를 갖춰야 한다”며 건식저장시설 설치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출했다.

문제는 이날 국감에서 상당수 의원이 한수원의 건식저장시설 설치 계획에 동의를 표하고 속도전을 주문했을뿐 해당 시설 설치에 따른 동남권 주민의 안전 우려나 한수원에 재검토를촉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울산지역의 국회의원이 국회 과방위에 단 한 명도 포진되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은 결과로 분석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는 지역 의원이 전무하다 보니 건식저장시설 설치에 대한 문제 제기나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가 애초부터 나올 수 없었던 셈이다. 하 의원이 경남에 지역구를 두기는 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국민의힘 소속이어서 그가 한 발언은 한수원에 ‘조속한 시설 설치’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 과방위 국감에서는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이 ‘한수원 직원들의 기강 해이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을 놓고도 여야가 격하게 대립했다. 목적 의식(원전 확대)이 사라져 근무 기강이 느슨해졌다는 주장이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근거도 없이 무리하게 연결짓는다”고 반발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