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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21> 해저로봇 개발자 이판묵

韓 해저로봇 개척 … 심해 6000m 미지의 세상 첫발 내딛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10-31 19:13:46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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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간 해양플랜트연구소 근무
- 세계 네 번째 해저 6000m 탐사
- ‘해미래’ 개발 주도 등 연구 매진

- 1988년 원격 무인잠수정 설계
- 핵심부품 전원변환기 국산화도
- 해저탐사 땐 24시간 진두지휘
- 기술 접목 ‘인어공주’ 제작이 꿈

바다가 생소하긴 화성보다도 더하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며 평균수심이 3700여m인 바다에서도 심해(深海)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일반인은 수로부인과 별주부, 심청이 다녀온 용궁이 상상의 한계다. 10m마다 1기압씩 높아져 30m 이하 물속에서는 인간의 활동이 어렵고 6000m로 내려가면 엄지손톱의 면적에 1톤(ton)의 압력이 가해진다. 그런 곳에서 사람 대신 조사와 작업 수행은 해저로봇만이 가능하다.
연구선을 타고 해저로봇 탐사 작업에 나선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이판묵 박사. KRISO 제공
■6000m 심해 무인잠수정 개발 주도

이판묵(62) 박사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에 근무한 37년간 해저로봇의 기술 발전과 실용화에 일로매진해왔다. 그가 2007년 개발을 주도한 무인잠수정 ‘해미래’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해저 6000m에서의 열수광상과 해저면 조사, 시료 채취, 생물 탐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 시기를 전후해 이 박사는 200m급 자율무인잠수정 ‘보람호’와 ‘이심이’, 조류의 저항에 강한 기뢰제거용 무인로봇, 수중 복합이동로봇 ‘크랩스터’ 등의 핵심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해저로봇은 해저 관측을 비롯해 지형, 해저자원·해저환경 조사, 해저플랜트 설치, 해저파이프라인 검사, 해저구조물 유지 관리, 그리고 해저기뢰 탐색과 제거, 감시정찰, 잠수함 대응작전 등 군사적 목적, 재난 예방 등 활용방안이 다양합니다.”

■기계공학도 출신… 해양구조물 연구

2016년 서태평양 괌 인근 3000m 해저 탐사에 나선 무인잠수정 ‘해미래’가 바다에 투입되는 모습(위)과 ‘해미래’가 보내온 해저의 모습. KRISO 제공
이판묵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서 이병식과 노옥자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초중고는 서울에서 다녔다. 나선형 기어가 맞물리는 아름다움에 반해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택한 대학 1학년 시절, 부산 광안리에서 해거름 녘 하늘과 바다가 맞물린 신비로운 풍경에 매료되었다. 문득 어린 시절 읽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내용을 떠올렸고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과정을 마친 이판묵은 1985년 한국기계연구소 선박분소(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KRISO)에 입사했다. 그리곤 해저유전 개발 붐이 불면서 심해의 유정(油井)을 찾으려는 요구에 발맞춰 설치된 해양공학연구실에서 해양구조물 연구에 참여했다. 자연스레 기계공학과 조선공학, 해양공학, 메카트로닉스공학, 컴퓨터공학 등이 두루 응용된 해저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주변의 연구 수준은 걸음마 단계였다. 기왕에 해저로봇에 관해 배운 바는 없지만 ‘진동 제어’로 석사논문을 썼고 ‘휴보’ 로봇 개발자 오준호 교수에게 지도받은 이판묵 연구원은 그 연구에 나서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잠수부 대신할 원격조종 잠수정 설계

인력 인프라 예산은 물론 시험 장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그는 밤늦게까지 실험실에서 시제품 제작에 매달렸다. 그 결과 드디어 1988년 잠수부 역할을 대신하는 원격조종 무인잠수정 설계로 국내 해저로봇 개발의 출발을 알렸다. 이어 1998년에는 ‘이산 슬라이딩 모드 제어 및 자율무인잠수정에의 응용’으로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해 10개월간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연구하며 해저로봇 개발 의지를 다졌다.

■핵심부품 전원변환기 국산화

해저로봇 개발에는 소재와 부품 장비 등 관련 기술 지원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6000m급 심해 무인잠수정 개발에 고전압 대용량 전원변환기가 꼭 필요했음에도 2004년 당시에는 국내에 이를 제작하는 업체가 없었다. 유사한 로봇을 개발한 미국의 연구소에 문의해 미국 제조회사에 제작을 의뢰했더니 “1000대를 주문하지 않으면 만들어줄 수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기술 유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1대만 한국에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에 연구진은 부산지역에 있는 전원변환기 전문업체를 끈질기게 설득해 마침내 국내 최초로 수중용 전원변환기 제작에 성공했다.

해저로봇은 해저탐사 작업도 어렵다. 탐사지역을 정하고 해류와 기후 등 환경을 파악해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막상 로봇을 현장에 투입할 때는 절로 긴장감이 넘쳤다. 한반도 주위 해저는 빠른 조류와 탁한 시계(視界), 깊은 해저지형 등 온갖 악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장에 해저로봇을 내려보내면 케이블의 긁힘과 꺾임, 파괴와 함께 누수로 인한 전자부품 손상, 작업 중 충돌로 인한 카메라나 라이트 손상 등 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연구책임자는 연구선에 머물며 탐사를 진행하는 동안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로봇을 심해로 내려보냈다 다시 회수하기까지 연구진은 2교대로 쉬지만 책임자는 24시간 내내 로봇의 작동을 지켜보곤 한다. 옆에서 누가 쉬라고 권해도 현장 상황이 궁금해 한시도 모니터 앞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로봇이 제대로 작동해 목표 지점에서 해저 관측과 샘플 채집 등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할 때의 보람은 다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국가 간 해저로봇 경쟁 韓 전망 밝아

해저로봇 개발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은 치열하다. 2012년 중국이 심해유인잠수정 ‘자오룽’으로 7000m 심해를 탐사해 일본 ‘신카이6500’의 기록을 깬 건 일대 사건이었다. 이에 자극받아 한국도 본격적 유·무인잠수정 개발에 나서면서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판묵 박사는 2008년 한국해양연구원 해양탐사장비연구사업단 단장, 2011년 KRISO 해양시스템연구부 부장, 2020년 KRISO 해양시스템연구본부 본부장 등으로 일하며 그 요청에 부응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서도 해저로봇 연구자 수십 명이 대학과 연구소, 기업에 포진해 기술 연구와 확산에 나서게 됐다. 주위의 개발 환경 역시 조선해양산업, 기자재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다양한 시험이 가능한 수조(水槽), 해저환경 재현용 고압챔버, 연구조사선이 갖추어졌고, 인공지능과 통신, 신호처리, 프로세서 등 기술도 구비했다. 국내 유수의 대학들은 KRISO,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한국로봇융합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협력하고 기업과 협조하면서 각자의 전문기술 융합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KIOST는 산·학·연을 연계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감당해왔다.

이판묵 박사는 한국의 해저로봇 개발의 전망이 밝다고 확신한다. “국내 해양로봇 시장은 좁지만 시야를 세계로 넓히면 기술을 적용할 영역은 넓다. 특히 한국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활용, 자율운항시스템 개발 등에 앞서갈 전문기술을 지니고 있다.” 과연 최형식 한국해양대 교수가 KRISO와 함께 추진하는 수중로봇 상용화, KIOST가 총괄해 건설 현장에 투입한 무인수중건설로봇 개발은 괄목할 만한 업적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자율제어 등 첨단기술을 해저로봇 개발에 적용하려는 김진환 KAIST 교수의 연구도 각광을 받고 있다. 유선철 포항공대 교수는 “세상에서 인기를 끄는 다른 과학기술과 융합해 해저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되, 무엇보다 공공영역에서 과감한 개발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처럼 개발 전망이 밝아지면서 이판묵 박사의 연구 역정에 대한 주위의 평가도 도탑다. “해저로봇 연구의 기틀을 다진 연구자”부터 “시종일관 해저로봇 개발의 현장을 지켜온 과학자”라는 주위 연구자들의 찬사가 그것이다. 그런 공로로 이 박사는 2008년 장보고 대상 국무총리상을 비롯해 2010년 교육과학부 장관상, 그리고 2021년에는 ‘KRISO인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끝 무렵에 이판묵 박사는 문득 “언젠가 현장 기술이 접목된 인어공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에 지금은 접근이 어려운 심해지만 미래에는 실용과 꿈이 함께 살아 있는 공간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최형식(한국해양대 교수), 유선철(포항공대 교수), 김진환(한국과학기술원 교수)

※ 공동 기획=국제신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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