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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22> 극지연구 과학자 김예동

35년간 극지 개척…세종·다산·장보고 기지가 다 그의 작품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11-14 19:14:07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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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美 유학 중 남극행 첫발
- 천혜의 자연환경·생명체에 매료
- 남북극 연구자료조차 없던 시절
- 맨땅 헤딩하듯 韓연구시설 주도

- 亞 첫 국제남극연구과학위 의장
- 대체연료 가스수화물 발견 성과
- 남극 1740㎞ ‘K-루트’ 개발도

지구환경이 위태롭다. 혹한과 가뭄, 홍수 등 ‘극한기후 현상’ 중 해수면 상승이 특히 문제다. 안진호 서울대 교수는 지구 전체의 빙하와 온실가스로 이를 설명한다. 태양 빛 60%를 반사하는 남북극의 얼음이 녹고 자정능력을 초과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이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예동 박사가 2015년 12월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인근 빙원에서 연구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과연 극지는 온도 상승과 오존층 파괴, 생명 다양성 훼손으로 신음하고 있다. 남극의 얼음 모두가 녹으면 해수면 58m가 높아지고 부산 서울 인천은 물에 잠긴다.

인구 세계 29위이면서도 탄소 배출량은 9위인 한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구온난화는 해안에 사는 인류의 40%, 특히 빈곤층을 위협한다. 환경수호라는 인류 공영의 가치를 위해 극지연구는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제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 의장 김예동 박사(68)의 경고이자 권유다. 그는 ‘남극조약협의 당사국회의’와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자문하는 SCAR를 이끄는 아시아인으로선 최초의 의장이다.

■美 유학시절 미지의 남극에 매료

2016년 12월 장보고 과학기지 대원들이 야외 연구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수현 기자
김예동은 서울 돈암동에서 언어학자 김방한과 고창희의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내면으로의 침잠을 즐겼지만 미지에 대한 동경도 강했다. 라디오를 비롯한 집안의 기계는 모두 뜯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아나대로 유학을 간 그에게 1983년 남극연구에 참가해보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그에 걸린 장학금 못지않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연구란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의 부모들은 극구 반대했다. 그해 9월 소련 전투기의 대한항공 007기 격추로 조종사였던 둘째 아들을 잃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남극은 오래도록 서구 백인들 무대였다. 1911년 남극 탐험에 나선 일본인 시로세 노부도 “그건 부유하고 체질 강한 서양인 놀이”란 편견에 맞서야 했다. 하지만 김예동은 남극행을 고집했고 그 순백색과 청색의 얼음대륙에서 살아 숨 쉬는 화산과 생명체에 매료되었다. 그리곤 “한 번 온 사람은 반드시 다시 오게 된다”는 ‘남극 괴담’의 증인이 되었다. 1987년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막 남극연구를 시작한 고국의 ‘유치과학자’로 한국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연구원, KIOST) 극지연구실 멤버가 된 것이다. 이후 35년간 12, 13개월의 두 차례 월동을 포함해 모두 7년을 극지에 머물며 연구에 매진해왔다.

극지연구는 그 자체가 개척이었다. 1987년 ‘맨땅에 헤딩하듯’ 남극 세종과학기지 건설에 나선 H건설은 동토(凍土)공사 경험이 없었다. 현지 정보는 고사하고 어떤 작업복을 입어야 할지도 몰라 김 박사가 직접 피복공장에 가서 재질을 골랐다. 그렇게 밀어붙인 역사(役事)였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이 세종 과학기지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한 장보고 과학기지의 전경. 박수현 기자
■북극 다산기지 건설 주도

2002년 김 박사가 KIOST 극지연구본부장으로 주도한 북극 다산과학기지 건설 역시 기적에 가까웠다. 기지 건설에 필수적인 국제북극과학위원회(IASC) 가입에는 상당한 북극과학연구 실적이 요구되었지만 그런 성과는 사실상 전무했다. 1999년 김 박사와 강성호 현 극지연구소장이 중국 쇄빙선 쉐링호에 동승해 연구를 시작한 정도였다. 궁여지책으로 한국과학자 이름이 들어간 관련 논문을 모아 제출해 IASC 가입에 성공했다. 한국의 ‘스발바르조약’ 가입을 전제로 스발바르에 기지를 설치하고 장기 연구를 하겠다는 약속도 인정받았다. 그렇게 기지 건설에 성공한 한국은 2008년 북극이사회 옵저버가 되어 당당히 북극권 이해당사국이 되었다. 일에만 매달리느라 부친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김 박사에게는 다소나마 위안이 된 결과였다.

■제2 장보고 기지 건설단장 맡아

이후 2004년 KIOST 부설 극지연구소 초대 소장이 된 김 박사는 극지연구를 궤도에 올려놓았고 아시아극지과학포럼을 창설해 위원장을 맡았다. 다시 2009년에는 남극 제2기지 장보고과학기지 건설단장으로 험로에 뛰어들었다. 그는 ‘남극기지가 왜 둘씩이나 필요하냐?’는 주위를 설득하는 한편 발이 닳도록 예산처를 드나들었다. 주변에서의 기후연구 정도가 아니라 남극대륙에 들어가 빙하 대기 생물 운석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고, 크릴 메로 등 수산자원과 석유 가스 등 부존자원의 가치도 역설했다. 도리어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회의’ 회원국들은 한국의 기지 건설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그런 노력 끝에 드디어 극야(極夜)와 백야를 관찰할 수 있고 영하 40도와 초속 65m 강풍에도 연구가 가능한 친환경 기지를 건설했다.

남극에서의 월동생활은 힘들고 위험하다. 1996년엔 김 박사가 빙원의 크레바스에 빠졌다 구사일생으로 구출되었고 2003년엔 불의의 사고로 전재규 대원을 잃었다. 1960년대처럼 기지에서 마취 없이 맹장수술을 하진 않아도 24시간 내내 계속되는 어둠과 눈폭풍 블리자드에 갇혀 지내면 고독과 불안이 엄습한다.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밤새도록 독백투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위성전화와 편지에서 위안을 찾던 대원들은 위성통신과 인터넷이 열리자 가족 지인과의 긴 통화에 매달리곤 한다. 그런 대원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화목하게 이끄는 과정에서 월동대장 김 박사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빛을 발했다.

그런 고생 덕에 연구진은 한국이 300년간 쓸 수 있는 대체연료 ‘가스 수화물’을 발견했고 운석 채취로 세계 5위 보유국이 되었다. 남극의 빙붕(氷棚) 몇천m 아래에서 시추한 빙하 속 공기와 물로 고(古)기후와 장기기후변화를 분석했다. 자외선에 강한 생물체에서 항산화물질 ‘라말린’을 추출해 화장품 제조에 활용했고 영하의 수온을 견디는 물고기에서 부동액을 채취했다. 과거에는 러시아 쇄빙선을 빌려 쓰던 나라 연구진이 2011년에는 김예동 박사 지휘로 쇄빙선 아라온호를 운항해 러시아 어선을 구조했다.

■K-루트 발판 남극 제3 기지 추진

드디어 작년에 김 박사가 추진해온 ‘K-루트’ 1740㎞를 개척함으로써 남극대륙 한복판에서의 제3기지 건립이 가능해지면서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김종덕 해양수산개발원 원장은 전문지 ‘극지와 사람’ 최근호에서 “이젠 ‘극지활동진흥법’을 근거로 극지연구에 관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추진이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장기적 거시적 안목에서의 대규모 투자와 외교적 후원, 구체적 현장연구 지원은 여전한 숙제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려면 극지연구소를 극지연구원으로 확대하고 제2 쇄빙선 건조에 맞춰 북극항로에 기대가 큰 부산에 분원이 설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극지에 처음 발을 딛은 행운은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다”고 술회하는 김예동 박사는 그간 대한지구물리학회 회장, 남극로드맵도전 프로젝트 공동의장, 일본 극지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간의 공로로 그는 2005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되었고 2014년엔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받았다.

지난달 중순 제네바 과학외교포럼에서 돌아온 김 박사는 의욕이 넘쳤다. 그는 여생을 후배들의 극지연구 후원과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과학 외교’에 바치겠다고 했다. 이용희 한국해양대 교수는 “기왕에도 김 박사의 연구 덕에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한국의 노력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고 돌아보았다. 홍성민 인하대 교수는 그의 극지연구가 “연구 영역의 확대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밖에서 넓혀온 업적”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김예동 박사가 자신의 저서 ‘남극을 열다’에 고딕체로 눌러쓰며 강조한 말이었다. “극지 개척이야말로 국가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민족의 활동 영역을 세계로 넓히는 길이다.”

▶도움말씀 주신 분 = 이용희 한국해양대 교수, 홍성민 인하대 교수, 안진호 서울대 교수, 이상헌 부산대 교수

※ 공동 기획=국제신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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