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특별법 처리 늦어질수록
- 사용후핵연료 포화 대응 어려워
- 산업부, 원전 8개 지자체 압박
- 건식저장시설 완공에 7년 걸려
- 포화 이전 가동 프로세스 계획
- 시민단체와의 갈등 심화될듯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 계획’이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들어갔다. 한수원은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잠정 확정하며 올해 상반기 중 시설 설계를 시작하기로 했다. 정부 역시 부산 울산 등 원전 소재 지자체를 대상으로 ‘여론전’에 나선 모습이다. 해당 계획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정부 당국 간 갈등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원전 지자체에 ‘협조’ 공문
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산시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6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 특별법안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장관 명의 공문을 원전 소재 8개 지역 지자체장에게 발송했다.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울산시장과 부산 기장군수를 비롯해 전남지사(한빛원전)와 경주시장(월성원전), 울산 울주군수(새울원전), 전남 영광군수(한빛원전), 경북 울진군수(한울원전)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 시 차원에서 공문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산업부는 공문에서 “우리 부는 국정과제 및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따라 ‘고준위 특별법(약칭)’ 마련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는 방폐장 확보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중간 및 영구저장시설) 부지 선정 절차와 유치 지역 지원 방안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산업부는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면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기간도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부가 원전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한 것은 고준위 특별법 국회 처리가 일부 조항을 둘러싼 여야 간 이견으로 지체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여야는 총 3개의 고준위 특별법안(국민의힘 발의 2개, 더불어민주당 발의 1개)을 심사 중이다. 큰 틀에서 핵심 내용은 3개 법안 모두 ▷사용후핵연료 중간·영구저장시설 설치 근거 및 절차 법제화 ▷중간·영구저장시설이 마련될 때까지 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등이다.
다만 현재 여당은 고리원전 2호기 등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따른 추가 사용후핵연료도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수명 연장 없이 애초 계획된 설계 수명만큼의 사용후핵연료만 저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등 반발 커질 듯
특별법 처리가 늦어질수록 ‘사용후핵연료 포화’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용후핵연료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원전 가동이 멈추게 되는 만큼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이런 상황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는 조밀저장대(핵연료를 보다 촘촘히 배치할 수 있는 시설물)를 설치하면 2032년, 설치하지 않으면 2028년 포화할 것으로 추계됐다.
한수원이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 설치 계획을 구체화한 데에는 이런 상황도 반영됐다. 조밀저장대 설치를 전제로 올해 상반기 시설 설계에 들어간 뒤 2028년 공사를 시작하면 사용후핵연료 포화(2032년) 이전인 2030년에는 건식저장시설을 가동할 수 있다는 게 산업부와 한수원의 판단이다. 건식저장시설 완공까지는 통상 7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반발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원전 소재 탈핵단체 등은 “(정부와 한수원의 설명대로) 건식저장시설이 안전하게 임시로 운영되는 것이라면 서울 등 수도권에 설치하라”고 항의한다. 지난 7일 한수원이 부산에서 개최하려다 무산된 설명회 장소에서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건식저장시설 설치 계획의 백지화를 촉구했다.
원전 소재 지자체장에 대한 산업부의 협조 요청이 경우에 따라선 해당 지자체에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