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은 전기가 생명입니다. 최근 2차례나 정전이 발생해 입주 기업 손실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기업 유치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먼저 제대로 된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효원파워텍 김장목 대표가 부산 기장군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 도로변에 노출된 배전함을 가리키고 있다. 유정환 기자

14일 부산 기장군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에서 만난 파워반도체 업체 관계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부산시가 수도권 메모리반도체에 대항해 부산을 파워반도체 중심 도시로 만들고자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산단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아 “입주 기업들이 다 떠날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장 큰 문제는 도로변에 무방비로 노출된 배전함.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2차례나 차량이 배전반을 들이받았다. 이 때문에 전기가 끊겨 입주 업체들은 수억 원의 손해를 봤다. 순간적인 정전에도 제작하던 반도체용 부품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 24시간 가동되는 고가의 초정밀 장비에도 문제가 생긴다. 생산 부품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져 판매가 되지 않는 등 이후에도 피해가 누적된다.

파워반도체 1호 부산 이전 기업인 제엠제코 최윤화 대표는 “초정밀 장비에 에러가 났다가 사나흘 만에 복구됐지만 계속해 불량품이 나온다. 특히 외국산 장비는 제조 국가 기술자가 와서 고쳐야 해 부품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정전으로 최소 1억 원가량 손실을 입었다. 산단 내 전체 파워반도체 기업의 피해는 6, 7억 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산단에서 가동 중인 채석장 모습.

최 대표는 “입주할 때부터 배전반을 지중화하거나 방어벽을 쌓아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한국전력(한전)과 시, 기장군은 수십억 원이 든다며 손을 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산단에 입주 기업이 많아지면 정전 때마다 수백억 원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방사선의과학산단에는 현재 배전함 28개가 있다. 향후 150개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또 있다. 이곳 반도체 부품 업체 코앞에 채석장이 운영 중이다. 지난 1월 입주한 항공기용 인버터 개발 업체인 효원파워텍과 직선거리로 50ｍ가량 떨어져 있다. 효원파워텍 김장목 대표는 “공장을 계약할 때만 해도 없었는데 입주하면서 보니 바로 옆에 채석장이 있었다. 진동 때문에 벽이 흔들리고 먼지가 날아와 창문을 열기도 어렵다”며 “기장군에 항의해도 흙벽만 조금 높여줄 뿐이다. 내년 6월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데도 시와 기장군은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 기장군은 일반산단으로 조성한 곳에 시가 뒤늦게 파워반도체 기업을 집적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기장군 관계자는 “시가 반도체 업체를 유치하려면 미리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했다”며 “시와 한전이 예산을 투입해 배전반을 지중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는 “우리는 기업을 유치해 기장군에 연결해줄 뿐이다. 산단 관리는 기장군이 한다”고 맞섰다. ‘파워반도체 중심 도시’를 추구하는 부산의 민낯이다.

제엠제코 최 대표는 “최근 경남 밀양의 나노국가산단을 방문했다. 반도체 제조 산단이 아닌데도 전력 시설을 모두 지중화하고 에너지저장장치를 국내 2번째 크기로 설치해 입주 기업의 비용 절감과 정전 문제를 해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다음에 공장을 짓는다면 밀양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