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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새고 문은 뒤틀려 고장…“집수리? 고칠동안 어디 가라꼬”

영구임대 30년 보고서 <1> 집도 사람도 늙었다

  •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  |   입력 : 2023-09-17 20:18:07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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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5지구 습기 머금고 노후화
- 외관 비해 내부 낡을 대로 낡아
- 쿰쿰한 냄새, 환풍기 틀면 소음

- 주민 대부분 1인 가구 어르신
- 놀이터 아이들 없고 재떨이만

- “더 바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 방치 속 불편함은 익숙함으로
- 사회적 약자 고립 갈수록 극심

지난 7월 12일, 아직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이었지만 부산 최고기온은 28도까지 올라갔다. 이날 오후 찾은 사하구 다대5지구 영구임대주택은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에 덮였다. 경로당에서 처음 만나 안면을 튼 김미자(가명·여·87) 씨는 세 번의 설득 끝에 취재진에게 집을 보여줬다.
지난 7월 12일 본지 박호걸 기자가 부산 사하구 다대동 다대5지구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김미자(가명)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민철 박호걸 기자
■“새집 짓는 동안 어디 살아?”

먼저 김 씨는 집 자랑부터 했다. 복도 맨 끝이라 다른 집보다 반 평(1.65㎡) 남짓 공간이 더 있다는 것이었다.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 통로 같은 좁은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섰다. 김 씨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습기로 꿉꿉했지만 에어컨은 없었다. 그나마 바닷가인 덕에 현관문과 베란다 창문을 열자 집안으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매우 습했다. “문 열어놓으면 시원해. 선풍기도 필요 없어.” 김 씨는 또 집 자랑을 했다.

문을 활짝 열었는데도 집 안에 쿰쿰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냄새를 쫓아 베란다로 갔다. 배관에 문제가 있었다. 물이 샜고, 이 때문에 벽은 오래된 얼룩으로 찌들었다. 화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생각보다 훨씬 좁다. 환기를 위해 환풍기를 돌리는 중이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소음 측정기를 갖다 댔다. 68dB(데시벨). 보통 위층에서 아이들이 뛸 때 40dB, 망치질하거나 가구를 끌 때 59dB 정도로 측정된다.

김 씨가 좁은 욕실을 보여주는 모습.
화장실 문을 여닫기도 쉽지 않았다. 나무로 된 문과 문틈이 비틀어져 문을 닫은 뒤 다시 열리지 않았다. 양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힘껏 당겼더니 가까스로 문이 열렸다. 차마 다시 문을 닫지 못했다. 당황한 취재진이 김 씨의 눈치를 살폈다. 김 씨는 겸연쩍게 웃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야. 혼자 사니까 열어놓고 쓰면 돼.”

김 씨에게 집을 재건축해 새로 단장하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새집? 내 나이에 무슨…. 나는 질(길) 들어서 괜찮아.” 김 씨는 손사래 쳤다. 누구든 깨끗한 새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 영구임대주택 주민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남들 시선’이 두렵고, 잠시라도 ‘집 없이 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어쩌면 그게 진심이다.

집을 조금 고쳐서 지금보다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사정이 이것밖에 안 돼서 여기 들어왔는데, 더 바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집 고칠 동안 머무를 곳도 없고….” 김 씨는 거듭 손을 저었다.

■아이들 놀이터엔 재떨이만

물이 새는 김 씨 집 베란다를 살펴보는 복지공감포럼 박민성 사무국장.
밖으로 나와 아파트 단지를 둘러봤다. 생각보다 깨끗하게 정돈돼 ‘겉과 속’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속사정을 모르는 외부인 시선으로는 2000여 가구가 사는 영구임대주택이 평화롭게 보일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우레탄 바닥이 잘 깔린 놀이터는 텅 비었다. 간혹 다대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어르신만 몇 명 눈에 띄었다.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지만, 벤치마다 양철로 만든 재떨이가 놓였다. 30년 전 놀이터를 가득 채웠을 아이들은 이제 찾을 수 없다. 놀이터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던 한 어르신은 “99%가 1인 가구라고 보면 된다. 좁아서 둘은 못 산다”며 “예전에는 신혼부부도 많았는데 애 낳고 하면서 다 떠났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고 싶겠느냐”고 했다.

지난 3월 기준 부산도시공사가 관리하는 11개 영구임대주택 입주민은 1만2405명이다. 이 중 10대 미만은 27명(0.22%)뿐이다. 10대(162명·1.31%) 20대(605명·4.88%) 30대(470명·3.79%) 40대(745명·6.01%) 비율 역시 한 자릿수에 그친다. 반면 50대(1820명·14.67%) 60대(3563명·28.72%) 70대(2838명·22.88%)를 비롯해 80대 이상(2175명·17.53%)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영구임대주택과 이곳에 사는 주민 모두 ‘나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은 익숙함으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공간적 분리, 사회적 배제는 갈수록 극심해진다. 영구임대주택 관리 기관의 고민도 깊다. 치솟는 수선유지비를 계속 감당할 수도 없다.

현장에 동행한 복지포럼 공감 박민성 사무국장은 “이대로 두면 회복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재건축이든 리모델링이든 주거 변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줄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영구임대주택은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모아놓은 곳’으로 인식되고 지금보다 더 슬럼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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