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구임대주택 대부분 매우 협소
- 가족이 함께 거주할 환경 안돼
- 식탁·의자 놓을 자리 꿈도 못꿔
- 무릎 아픈 노부부 강제 좌식생활
- 1평만 더 커도 주거만족도 상승
- “2004년 이후 전혀 바뀌지 않은
- 최소 주거기준 개정 이뤄져야”
부산 사하구 다대5지구 영구임대주택. 이곳에 장진식(70) 씨 부부의 보금자리가 있다. 이 영구임대주택에서 장 씨 부부처럼 가족이 함께 사는 가구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한마디로 ‘희귀 사례’다.
갈수록 1인 가구가 느는 것과는 이유가 좀 다르다. 이곳 영구임대주택은 모두 2107가구. 입주민은 2487명이다. 대부분 1인 가구인 셈이다. 다양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둘 이상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면적이 가장 큰 원인이다. 30년 전 대규모로 부산에 영구임대주택을 지을 때부터 ‘가족’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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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다대5지구 영구임대주택 장진식(70) 씨 집 안방에서 장 씨 부부가 본지 박호걸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전민철 기자 |
■두 명이 사는 8평 아파트지난달 찾은 장 씨의 집은 정리 정돈이 매우 잘돼 있었다. 장 씨는 이곳에 몸을 들인 지 오래되지 않은 편이다. 2019년 입주해 도배와 청소를 새로 했다. 살림을 도맡아 하는 장 씨 아내(71)의 부지런함도 한몫했다. 장 씨 집 공급면적은 42.9㎡(13평). 그러나 공용을 제외한 전용면적은 27㎡(8.1평)에 그친다. 단순히 2분의 1로 나누면,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은 4평뿐이다. 장 씨는 “부부가 함께 살기엔 집이 너무 좁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이삿짐 절반은 버리고 왔다”고 했다.
장 씨 집 현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방이 있다.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한 거실 겸 주방을 지나면 안방과 베란다가 나온다. 장 씨 부부는 좁은 집을 최대한 활용하려 자투리 공간마다 선반을 설치했고 벽에 고리를 만들어 옷을 걸었다.
안방에는 싱글 사이즈 침대를 놓고 몸이 불편한 장 씨가 혼자서 잠을 잔다. 아내의 잠자리는 작은방 바닥이다. 작은방은 냉장고와 서랍장을 비롯한 세간이 들어차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취재에 동행한 복지포럼 공감 박민성 사무국장이 직접 누워봤다. 키 175㎝의 박 국장은 무릎을 구부려야 겨우 등을 붙일 수 있었다.
장 씨의 아내는 겸연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좁죠? 저도 이 나이 여자치고는 키가 좀 큰 편(167㎝)이라 무릎을 접지 않으면 못 누워요. 매일 새우잠을 잡니다.” 그러고는 냉장고 옆을 가리켰다. “거기 책이 몇 권 보이죠? 그건 잘 때 냉장고 아래를 막으려고 놔둔 거예요. 냉장고 팬에서 나오는 바람과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거실 겸 주방은 사실상 현관문과 안방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냉장고를 둘 데가 작은방밖에 없다. “안방 바닥이나 거실 통로에서 잠을 청하는 건 어때요? 새우잠 자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라고 묻자 장 씨의 아내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그것도 고민해 봤죠. 그런데 몸이 불편한 남편이 새벽에 화장실에 갈 때 방해가 돼서 그러지 못해요.”
화장실도 좁긴 마찬가지다. 변기와 붙은 왼쪽 오른쪽에 각각 세면대와 샤워기가 달려 있다. 샤워기 위에는 수건장이 있어 허리를 펼 수도 없다. 장 씨의 아내는 “샤워는 변기에 앉아서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식사할 때도 곤욕이다. 장 씨는 허리 수술을 5번 했을 정도로 몸이 불편하고, 아내도 무릎 관절이 안 좋다. 그런데도 안방에 작은 상을 놓고 바닥에서 밥을 먹는다. 사람 누울 공간도 없는데 식탁 놓을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장 씨는 “어쩌다 보니 영구임대주택에 들어오게 됐지만 그래도 사람답게 살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1평만 더 넓어도 만족도↑ |
| 장진식(70) 씨 아내가 잠을 자는 작은방에 복지포럼 공감 박민성 사무국장에 누워 있다. 웬만한 성인은 방이 좁아 다리를 펴고 잘 수 없다. 박호걸 기자 |
집이 1평이라도 넓으면 주거 만족도는 올라간다. 다대5지구 바로 옆 동백지구 영구임대주택이 그렇다. 동백지구 전용면적은 29.9㎡(9평)로, 다대5지구 보다 약 1평(2.9㎡) 넓다. 동백지구가 원래 영구임대주택이 아닌 다른 용도로 지어져서 그렇다. 이 아파트는 1992년 부산시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근로 청소년을 위해 만들었는데, 2007년 시가 부산도시공사로 현물 출자하며 영구임대주택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9월 시행한 주거 만족도 표본 조사에서 동백지구는 100점 만점에 77.2점을 받아 다대5지구의 67.2점보다 10점이 높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대5지구 입주민 중 상당수가 동백지구로 옮기고 싶어 한다.
동백지구 관리인은 “면적이 1평 정도 넓은 데다 소규모 단지(125가구)라 관리가 쉽고 주거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다대5지구에서도 여기로 옮기려는 주민이 많은데 좀처럼 빈 집이 잘 나오지 않아 현재 대기자만 8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동백지구 한 주민은 “다대5지구에 살다가 넘어왔다. 좁기는 마찬가지지만, 1평의 차이가 크다. 예전 살던 영구임대주택보다는 만족한다”고 전했다.
박 사무국장은 “주거 약자에게 1평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2004년 이후 최소 주거 기준이 개정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예전 기준은 지금의 주거 욕구와 차이가 크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한 수준으로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