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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배제에 마음도 몸도 병…고독사, 부산 평균의 18배

영구임대 30년 보고서 <4> 3년간 52명 쓸쓸히 생 마감

  •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  |   입력 : 2023-10-15 18:55:33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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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주민 1만 명당 고독사 17건
- 부산 전체 0.98건에 비해 월등
- 최근 3년 극단적 선택도 23건

- 심리적 고립, 집 낡을수록 더해
- 재건축 등으로 커뮤니티 등 필요
- 도시정비·주택법에 관련법 전무
- 사회적 합의 더불어 입법 선행을

15일 부산 한 영구임대주택에서 만난 A(여·59) 씨는 국제신문 취재진을 보자마자 ‘알려지지 않은’, 혹은 ‘감춰진’ 죽음을 전했다.

“최근 ○층에서 사람이 뛰어내렸어요. 여기서는 간혹 있는 일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 목숨을 던졌답니다. 얼마 전에는 ○층에서 사람이 숨졌는데, 너무 늦게 발견됐어요. 냄새가 많이 나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나 봐요.”

A 씨는 복도 창문으로 1층 주차장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살면 끔찍한 장면을 종종 목격합니다. 경찰차도 참 자주 와요.”

영구임대주택에는 ‘인연이 끊긴 채’ 살아가는,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 사회적 약자가 많다. 부산 영구임대주택에서 발생하는 고독사가 무려 평균의 18배에 달한다. 사회의 부정적 시선, 고립과 낙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환경 변화를 미룰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집’이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갈수록 느는 ‘고독한 죽음’

부산 사하구 다대5단지 영구임대주택.
국제신문 취재 결과 최근 몇 년간 부산도시공사가 관리하는 영구임대주택 11곳에서 매년 10건 이상 고독사가 확인됐다. 2020년 13건, 2021년 17건, 2022년 22건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부산도시공사 영구임대주택 입주자가 1만2405명이므로, 지난해 1만 명당 고독사는 17.73명으로 계산된다.

고독사 정의나 통계가 제각각이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1년 부산 1만 명당 고독사 발생 비율이 0.98명 수준이다. 이에 견주면 부산 영구임대주택에서의 고독사 발생 비율이 18.1배 더 높다. 최근 3년간 부산 영구임대주택에서는 ‘극단적 선택’으로 기록된 사망 사고도 23건이다.

이처럼 ‘어두운’ 주거 환경은 입주민의 재활 의지를 꺾는다. 부산 한 영구임대주택 주민 B(71) 씨는 “집 밖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침 뱉고, 술만 마시면 행패 부리는 입주민이 많다”며 “여기서 30년을 살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집도 사람도 병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영구임대주택 인근 복지관 관계자는 “원래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높은 알코올 의존증 등 정신적 문제로 인한 사고나 폭행 사건 등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했다.

‘공간적 고립’과 ‘사회적 배제’가 원인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복지포럼 공감 박민성 사무국장은 “고독사와 극단적 선택은 고립과 배제가 오랜 기간 지속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주거 환경이 나빠지고, 본인이 이를 개선할 능력과 의지가 부족해 스스로 비관할 가능성이 크다”며 “재건축 등으로 주민이 운동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복지연대 김경일 사무국장은 “영구임대주택 자체가 주는 심리적 고립감은 집이 낡으면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인근에 복지관이 있지만, 집 안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며 “주거 환경 개선과 함께 고립·배제 문제를 해소할 ‘돌봄’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발도 못 뗀 주거 환경 개선

재건축을 비롯한 영구임대주택 주거 환경 개선은 쉽지 않다. 먼저 제도적 준비가 부실하다. 재건축은 도시정비법, 리모델링은 주택법에 사업을 위한 제반 절차가 정리돼 있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은 재건축과 관련한 법이 없다.

한 정부 연구기관 관계자는 “신축 공사는 공공주택특별법에 근거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오래된 공공임대주택을 고쳐 쓰는 근거는 부족하다. 장기임대주택법에 일부 관련 조항이 있지만 이 정도로는 수많은 행정 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사회적 합의와 입법이 선행돼야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반 정비사업은 사업 주체가 입주민을 상대로 일정 동의율을 확보하면 진행된다. 일부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입주민이 있어도 매도 청구권, 즉 일종의 ‘강행권’을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부산 영구임대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나 부산도시공사가 소유권을 갖지만, 입주민이 정비사업에 반대하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인권 문제와 엮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필수 요건이 된다. 별도 전담 조직 신설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산대 서성수 부동산대학원장은 “비용을 투입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여서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들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며 “입주민·전문가·행정이 망라된 공청회 등을 통해 시간을 두고 협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단기적으로는 주거 환경을 심하게 저해하는 입주민을 정신과 전문의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거쳐 따로 보호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영구임대주택이 차별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인권 침해가 없도록 철저한 심사와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국민의힘 이복조(사하구4) 의원은 “서울시는 영구임대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2011년부터 각종 연구를 진행했는데 부산시는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고 실태 조사도 진행한 일이 없다”며 “지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도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므로, 우선 첫걸음을 떼는 게 급하다”고 주문했다.

부산시 김봉철 건축주택국장은 “노후 영구임대주택 문제에 깊이 공감한다. 서울시 등 다른 지역 사례를 연구·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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