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주사 타지로 이전 고민하는데
- 부산시는 서울서 유치 설명회
- ESS·무정전전원장치 엄두 못내
- 배전함 이설 외 새 대안 ‘제자리’
- 오늘 실무회의 거쳐 방침 논의

부산 기장군 동남권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에 입주한 전력반도체(파워반도체) 업체들이 1년 넘게 정전으로 골머리를 앓는데도 부산시와 기장군은 확실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책 마련이 수개월째 제자리걸음하는 사이 19일 또다시 정전이 발생해 전력반도체를 육성하려는 시의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부에서는 정전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수도권 전력반도체 기업 유치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19일 정전이 발생한 부산 기장군 동남권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 내 전신주에서 한전 관계자가 피뢰기에 감전된 까마귀를 빼내고 있다. 한전 제공

19일 국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의과학산단 정전은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차량이 인도에 노출된 배전함을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력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기업들의 설비가 파손됐다. 또 생산하던 반도체 부품을 폐기해야 해 기업당 수억 원에 이르는 피해를 봤다.

이후 이성권 시 경제부시장을 중심으로 대책 찾기에 나섰고 한전과 경찰 등은 산단 내 41기의 배전함을 옮기고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데다 배전함 이설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대안을 찾느라 차일피일했다.

지난 7월 20일 이곳이 전력반도체를 앞세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로 지정되자 시는 정전 문제 해결과 관련 기업 유치를 이원화해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달 12일 공장을 건립하던 업체가 매설된 전선을 절단해 또 산단이 정전됐다. 이후 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며,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을 돕는 한국에너지공단의 내년 공모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방침만 내놓고 있다.

시가 정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도권 기업 투자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수도권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어 전력반도체 기업 등 3개 업체와 1102억 원 규모 투자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며 성과를 뽐냈다. 반면 이미 특화산단에 입주한 업체 사이에서는 거듭된 정전으로 공장 이전을 고려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시는 혼란에 빠졌다. 이미 기반 시설이 구축돼 기업마다 전용 선로를 까는 것도 어렵고, ESS와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설치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기장군도 비용 부담에 난색을 보인다. 이에 시가 해결책 마련을 위해 개최하는 20일 실무회의와 오는 26일 이 부시장 주재 각 기관 대책회의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부산 전력반도체 1호 기업 ‘제엠제코’ 최윤화 대표는 “1년여 만에 네 차례나 정전되는 반도체 단지가 있다는 얘기는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입주 기업들 사이에서 후진국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시가 특화단지에 걸맞은 대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