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방위 관세 부과 등 대외 리스크가 무섭게 몰아치면서 우리 경제가 정치 불확실성 일부 해소로 한숨을 돌린지 얼마 안 돼 다시 극한의 위기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90일간 상호관세 적용 유예’를 최근 결정함에 따라 우리 정부로서는 대미 협상 등과 관련한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일부 해외 기관이 전망한 ‘올해 한국 경제 0%대 전망’은 글로벌 통상 전쟁 격화 등과 맞물려 현실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최상목(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4월호에서 이전까지 유지해 온 ‘대내외 불확실성’이라는 표현을 ‘미국 관세 부과에 따른 대외 여건 악화’로 바꿨다. ‘대내’ 관련 불확실성을 뺀 것이다.

이는 대통령 파면으로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일부 제거됐다는 진단으로 해석된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지난주 보고서에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한국의 정치리스크가 완화됐다고 긍정 평가했다.

문제는 정치 리스크가 잦아들기 무섭게 극한의 대외 리스크가 몰아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주먹구구식 관세 정책이 대표적이다.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시장에 안도감을 주기보다 극한의 불확실성을 가져다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결정 탓에 국제유가나 뉴욕증시가 대혼돈에 빠져든 것이 이를 방증한다. 트럼프 1기와 달리 중국이 미국에 정면대결의 자세를 취하면서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의 총수출액 6838억 달러 중 대중국과 대미국 수출액은 각각 1330억 달러, 1278억 달러로 두 국가의 비중은 총 38.1%에 달했다.

미국의 관세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면 중국으로의 중간재 수출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한국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78.4%는 중간재였다.

가뜩이나 내수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로서는 미·중 간 ‘고래싸움’ 사이에서 유일한 엔진 격인 수출마저 꺾이는 셈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로 잇따라 0%대 전망치를 내놓는 것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JP모건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7%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영국의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0.9% 성장 전망치를 제시했다.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아직 ‘1%대 중반’의 전망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1%선을 지키기 어렵다는 현실론에 갈수록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현재 정부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와 관련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중심의 대외경제장관회의 및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일명 F4 회의) ▷기재부 1차관 주재 ‘통상현안 관련 범정부 국내대응 TF’ 등을 가동 중이다.

하지만 금융지원 방안 등을 제외하고는 뾰족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느라 이미 바닥 수준으로 떨어진 내수를 살리는 데 정책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