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예고한 대한국 상호관세(25%) 부과(8월 1일)를 닷새가량 앞두고 우리 정부가 관세율을 낮추기 위한 총력 태세에 돌입했다.

지난주 미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무산된 한·미 재무수장 간 협의는 이번 주 개최된다. 미국을 방문 중인 산업·통상수장들도 현지에 계속 머물며 막판 고위급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만 정부의 이 같은 총력전에도 다음 달 1일 ‘25%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내수 부진 장기화 등으로 이미 타격을 입은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구윤철(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기재부 제공

●가장 큰 난관은 ‘촉박한 시간’

27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간 통상협의는 이번 주 개최된다.

애초 지난 25일 예정됐다가 베센트 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무산됐으나 다시 열기로 한·미 양국이 의견을 모은 것이다. 앞서 대통령실과 기재부는 지난 26일 오후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공지했다. 다만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관세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24~26일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각각 만나 협상을 이어갔다. 상호관세 유예 기한이 끝나기 전 타결을 목표로 한국의 재무·통상 수장들이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특히 남은 닷새간 대미 통상협상에서는 경쟁력이 높은 한국의 조선업이 관세 문제를 푸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조선업 역량 강화를 지속해서 강조해 왔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조선업 재건을 도모하고 중국의 해양 패권을 저지하기 위한 행정명령도 내렸다.

대통령실도 지난 26일 “우리 측은 미 측의 조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양국 간 조선 협력을 포함한 상호 합의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민감한 분야인 농산물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비관세 장벽 완화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과 관련해 “(미국과의) 협상 품목에 농산물도 포함됐다”며 시장 개방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하기도 했다.

다만 정부의 이런 총력전에도 ‘전면 타결’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빠듯한 시간이 가장 큰 난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7일 스코틀랜드에서 유럽연합(EU)과 관세 협상을 한다. 28, 29일 스웨덴에서는 베센트 장관 등 미 무역 협상의 주요 장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중국과 고위급 무역 회담이 예정돼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대면 협상이 가능한 날이 실질적으로 30, 31일 이틀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이 관세율(25→15%)을 낮추면서 5500억 달러(약 76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한 점도 우리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우리가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 투자 규모는 ‘1000억 달러+α’ 수준이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정관(왼쪽 첫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대미 통상 긴급 점검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산업부 제공

●“관세 강행 땐 실질 GDP 0.3~0.4% 감소”

상호관세가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제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미국 관세 충격은 최근 발표된 현대·기아차 실적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해 2분기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보다 24.1% 급감했다. 현대차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5.8% 떨어졌다. 지난해 2분기 실적 호조에 따른 기저효과에 더해 미국 품목 관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수입 자동차에 25%의 품목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앞으로 사정은 더 좋지 않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의 상호관세율이 25%에서 15%로 인하됐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높은 관세율이 적용되면 한국 자동차는 가격 경쟁력에서 일본 차에 밀릴 수밖에 없다. 50% 품목 관세가 부과된 철강도 올해 상반기 수출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5.9% 줄어드는 등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우리 정부가 대미 관세 협상에 실패하면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한미 관세 조치 협의 관련 공청회’에서 “미국의 관세정책이 그대로 강행되면 한국 경제가 안정을 회복한다고 해도 실질 GDP가 0.3~0.4%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KIEP는 “한국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미국 관세 충격에 완전히 적응해도 최대 GDP 0.4% 수준의 ‘회복 불가능한 구조적인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KIEP 분석에는 일본의 관세율이 15%로 낮아진 점이 반영되지 않았다. 일본의 낮아진 관세율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인 GDP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5%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0%대에 갇힌 한국 성장률 전망의 추가 하향 조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