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회의 결과물 WTO 미언급
- 장관성명에 “중요성 인정” 담아
- 경제동맹 사라지고 ‘각자도생’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외교·통상 장관들이 2025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무역 증진을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반대로 APEC 정상회의 결과물인 ‘경주 선언’에는 WTO에 대한 언급(자유무역)이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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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2세션을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주선언, 자유무역 쇠퇴기조 반영”
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APEC 21개 회원국의 외교·통상 장관들은 APEC 정상회의에 맞춰 지난달 30일 경주에서 ‘APEC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AMM)’를 진행한 뒤 이틀 뒤인 지난 1일 이런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장관은 “우리는 무역 현안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며 “WTO에서 합의된 규범이 글로벌 무역 촉진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어 “WTO에서 다자간 협상, 특히 복수국 간 협상이 회원국들의 관심사 진전과 WTO의 적실성(실제에 들어맞는 성질) 제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며 “WTO가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실에 보다 적합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고 필수적이며 포괄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한 글로벌 통상환경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며 “합의에 기초한 다자주의 정신 아래 APEC의 지속적인 협력을 매우 중시한다”고 언급했다.
AMM은 APEC 정상회의에서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최종 점검 성격의 각료급 회의다. APEC 각급 기관의 올해 활동과 의장국 핵심 성과, 고위관리회의 결과 등을 종합 점검해 공동성명으로 발표한다. 이번 AMM 회의는 지난달 30일 종료됐지만, 공동성명에 담길 문안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이틀 뒤인 지난 1일 ‘경주 선언’과 함께 발표됐다.
그러나 경주 선언에는 WTO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 우선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미국 행정부가 자유무역 체제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경주 선언에 ‘자유무역’이 빠진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김’으로 다자무역 질서가 약해진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역대 APEC 정상선언이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를 바탕에 깔고 WTO 체제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다자주의를 지향해 왔다. 이에 WTO에 대한 언급이 빠진 이번 경주 선언에는 자유무역 쇠퇴 기조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아울러 기존 자유무역 경제공식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은 ‘각자도생’의 글로벌 뉴노멀(새로운 기준·표준)이 재확인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경제 ‘생존’ 열쇠는 AI”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기회로 한미 관세협상을 극적 타결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발 ‘관세 장벽’을 한국이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가 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키우는 데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행히 경주 선언에 ‘AI 이니셔티브’가 명시된 것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일종의 ‘성과’로 볼 수 있다. AI 이니셔티브는 ▷AI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 촉진 ▷역량 강화 및 AI 혜택 확산 ▷AI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APEC 모든 회원국이 AI 전환 과정에 참여하고 AI 기술 발전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핵심 취지다.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 국내 4개 기업(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클라우드)에 총 26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투입하기로 약속한 것도 AI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하는 우리 정부에게 희소식이다. 현재 GPU는 세계적으로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경제동맹이 사라진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한국 경제가 ‘생존’에 성공하려면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업종을 이을 차세대 먹거리로 AI를 중점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