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22년 ‘유럽 스마트관광 수도’에 선정된 스페인 발렌시아는 누구나 장벽 없이 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스마트 기술을 관광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사진은 미겔 앙헬 페레스 발렌시아 관광청 부국장이 발렌시아 대성당 앞에서 증강현실(AR)로 명소를 소개하는 앱을 직접 시연하는 모습. 최승희 기자 |
- 기술 과시 아닌 불편 덜기 초점
- EU 스마트관광의 수도로 우뚝
- 24시간 관광카드 무인 발급기
- 방문객 분산·정책 개발에 활용
- 스마트폰 비추면 정보 음성설명
- 교통앱선 도보·자전거 경로까지
‘스마트관광(smart tourism)’이라고 하면 흔히 AI와 빅데이터, VR(가상현실) 같은 첨단 기술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유럽연합(EU)이 선정한 스마트 관광도시는 기술의 수준보다 기술의 방향에 주목하고 있었다.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은 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았다. 누구나 도시를 편리하게 누리고 주민과 관광객이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관광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도시 경험의 접근성 제고 기술 |
| 미래도시를 구현해놓은 듯한 예술과과학의도시 전경. 최승희 기자 |
지난달 5일 스페인 동부의 해안도시 발렌시아에서 만난 미겔 앙헬 페레스(Miguel Angel Perez) 발렌시아 관광청 부국장은 사무실 대신 구시가지 거리로 기자를 이끌었다. 18년 동안 현장 실무를 맡아온 베테랑인 그의 설명은 관광 행정 최전선인 골목길 위에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멈춰 선 곳은 발렌시아 대성당 앞. 미겔 부국장은 공식 관광 앱 비짓 발렌시아(Visit Valencia)를 실행한 뒤 눈앞의 건물을 카메라로 비췄다. 그러자 화면 위로 건물의 역사와 건축 정보 등이 증강현실(AR) 형태로 겹쳐 나타났다. 건물 외형을 인식하는 시각적 위치인식(VPS·Visual Positioning System) 기술 덕분이었다. 그는 “언어가 달라도 누구나 장벽 없이 도시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골목으로 발길을 옮겨 리베르 납 병정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24시간 발렌시아 투어리스트 카드(VTC) 무인발급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는 “관광객이 안내소 운영시간에 맞출 필요도, 언어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걱정도 없어야 한다”며 “현재 시내 20곳에서 운영되는 이 키오스크는 언제든 관광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이 기기는 카드 발급기인 동시에 카드 이용 데이터를 관광 인텔리전스 시스템(SIT·Smart Tourism Intelligence System)과 연계해 관광객 이동과 혼잡도, 국가별 방문 특성, 만족도 등을 분석하는 기능도 한다. 축적된 데이터는 특정 관광지에 인파가 몰리면 관광객을 분산시키고, 예약 추이를 분석해 프로그램 운영을 조정하는 등 관광정책에 활용된다. 미겔 부국장은 “예전엔 관행이나 직관에 의존해 정책을 세웠다면 지금은 데이터를 보고 결정한다. 스마트관광은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광 경험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문턱 낮추고 지속가능 관광 지향인구 약 83만 명의 발렌시아는 정주인구의 3배가량인 매년 240만 명이 넘는 해외 관광객이 찾는 스페인의 대표 관광도시다. EU는 2022년 이 도시를 유럽 스마트관광 수도(European Capital of Smart Tourism)로 선정하며 접근성과 지속가능성, 디지털화, 문화유산 보존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버스정류장이나 주요 시설에 설치된 ‘나비렌스(NaviLens)’ 코드 역시 대표 사례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대략적인 방향으로만 비춰도 몇 m 밖에서 버스 노선과 주변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했다. 첨단 기술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볼거리가 아니라 장애인과 고령자, 외국인까지 누구나 도시를 불편 없이 이용하도록 문턱을 낮추는 ‘다정한’ 도구였다.
‘스마트’는 디지털 기술에만 머물지 않고 친환경 정책으로 이어진다. 발렌시아는 전 세계 도시 최초로 관광산업의 탄소·물 발자국을 측정해 정책에 반영하며, 관광객이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자연스럽게 이용하도록 도시의 모빌리티 인프라를 정밀하게 설계했다. 교통앱에서는 자동차와 대중교통, 도보뿐만 아니라 자전거 이용 경로까지 안내하고 있어 짧은 거리 이동에는 자동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1957년 대홍수 이후 강줄기를 돌리고 메워 조성한 투리아 공원을 따라 구도심과 예술과학도시 등으로 이동할 때도 공공자전거 발렌비시(Valenbisi)가 유용했다.
대성당 뒤편 골목에 위치한 오래된 쌀 요리 전문점 ‘라 로라(La Lola)’에서 미겔 부국장은 커다란 팬에 담긴 전통 요리 빠에야(Paella)를 앞에 두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빠에야는 원래 각자 접시에 덜어 먹지 않는다. 모두가 한 팬에서 함께 숟가락을 얹어 나눠 먹는다”며 “우리는 주민과 관광객도 이 도시를 그렇게 공유하는 존재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주민이 살기 좋은 도시가 결국 관광객에게도 가장 좋은 도시”라며 “기술을 통해 도시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며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지속가능하게 도시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 본 사업은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