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취해 밤바다로 뛰어 들고
- 옆 사람들과 시비·주먹다짐
- 금연구역 무시 곳곳서 흡연
- 출동한 경찰에 욕설 등 난동
- 상당수는 10대…일탈 장소로

- '해변에선 금주' 분위기 확산
- 조례·법안 제정 움직임 활발

여름철 피서객이 찾는 최대의 공공장소인 부산의 해수욕장이 밤마다 백사장을 점령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술판과 담배 연기에 찌들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서 몰려든 피서객들은 여유롭게 밤바다 정취를 즐기려던 계획을 망치고 국제 해양도시 부산의 관광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다.

■해수욕장은 밤마다 몸살

26일 새벽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젊은이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다.

26일 0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이벤트광장(씨클라우드호텔 맞은편) 앞 백사장에는 평일인데도 돗자리를 펴놓고 술을 마시는 피서객들이 30~40팀가량 눈에 띄었다. 젊은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여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돗자리에는 소주병과 맥주병 여러 개가 뒹굴고 있었다. 가족 단위 피서객들은 이들 술판을 피해 해수욕장 양 끝에 자리를 잡거나 아예 일찍 떠나는 모습이었다.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나온 이모(42) 씨 부부는 "열대야를 피해 해수욕장에 왔는데 백사장은 거의 술 마시는 분위기라 아이와 함께 오기에는 적당치 않아보인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해운대해수욕장은 금연구역이다. 그러나 밤 시간대 이곳은 '금연 해방구역'로 변한다. 돗자리 술판 곳곳에서 금연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순찰을 돌던 해운대여름경찰서 직원이 "해운대해수욕장은 금연구역"이라고 계도하자 그제서야 술을 마시며 담배를 물고 있던 피서객들이 백사장에 담뱃불을 비벼 껐다. 경찰은 "피서객 대부분이 해운대해수욕장이 금연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술을 마시면 자연스럽게 담배 생각이 나기 마련이라 밤에는 흡연족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부터 해운대구보건소 직원과 금연단속요원 등 8명으로 구성된 '특별단속팀'이 해수욕장 금연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야간에는 활동하지 않아 이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진다.

백사장 곳곳에서 10대 소년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큰소리로 욕을 주고받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주점처럼 일일이 신분증 확인을 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해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술을 구입한 뒤 해수욕장에서 '어른 흉내'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술을 마시고 수영이 금지된 밤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다. 음주상태에서 갑자기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심장마비로 숨질 위험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만취해 시민이나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해운대경찰서는 술을 마시고 해운대여름경찰서에 찾아와 근무 중인 경찰에게 욕설을 하고 유리병으로 위협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지난 25일 박모(34) 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해운대해수욕장의 한 질서유지요원은 "새벽 2시가 넘어가면 취기가 오를 대로 올라 조그마한 일에도 실랑이를 벌이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동트기 직전에는 취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해수욕장은 몸살을 앓는다. 부산시의회 교육위원회 김길용 의원에 따르면 올해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발생하는 하루 평균 8.5t의 쓰레기 처리에 인력 170명과 예산 4억8600만 원이 투입된다.

이런 가운데 해수욕장 최성수기인 이번 주말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주점'으로 변할 것으로 보여 경찰과 해운대구청 측은 벌써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는 '금주 해변' 분위기 확산

백사장 음주 폐해 예방을 위해 이날 오후 정부와 알코올 관련 시민단체로 구성된 파랑새포럼 관계자들의 캠페인 모습. 박수현 김성효 기자

현재 강원도 강릉 경포해수욕장 등 일부 해수욕장은 금주(禁酒) 해변으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김길용 부산시의원도 지난 24일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부산지역 해수욕장의 금주 해변 지정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해수욕장은 '부산시 금연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에 따라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지만, 금주를 강제할 수단은 아직 없다. 반면 뉴질랜드 일부 해변은 술을 마시다가 적발되면 최대 182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박성호(경남 창원 의창구) 의원은 지난 5일 특정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자체의 관련 조례 제정이 가능해져 해수욕장 음주를 막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부산시와 구·군도 이제 공공장소 금연 조례와 마찬가지로 공공장소 금주 조례 제정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고 관련 법의 국회 통과를 전제로 한 후속 절차를 준비 중이다. 시는 건강증진 평가사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으로 구·군에 해변 등 공공장소 금주 조례 제정을 유도할 예정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을 관리하고 있는 해운대구청도 적극적이다. 배덕광 해운대구청장은 "오래전부터 건전한 해수욕장 음주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해수욕장 관리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관광지인 만큼 원천적으로 음주를 막기보다는 건전한 술 문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