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오 부산발전연구원장이 25일 "부산이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특화해야 서울을 앞 설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도시발전 사람 중심 전환
- 산복도로 르네상스에 애정

- 행복지수·일자리 창출 주력
- 기반시설 건설 마무리단계
- 소프트혁신 성과 창출할 때

- 시정 비판, 학계·언론이 할일
- 민간 싱크탱크 더 생겨야

- 부산이 서울에 앞서려면
- 해양·영화·도시재생 등 잘 하는 것부터 특화해야

이언오(59) 부산발전연구원장(BDI)이 지난 6일 연임에 성공했다. 허남식 부산시장과 내년 6월까지 임기를 같이 한다. 석·박사급 인력 100여 명이 근무하는 BDI는 부산시 정책을 자문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싱크탱크. 25일 만난 이 원장은 "부산은 담론과 소통이 활발하지 않다. 오페라하우스 논란만 해도 찬성과 반대만 있고 대안은 실종됐다. 원탁회의를 통해 답을 내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창조적 역량, 도시의 상상력, 남을 비하하지 않고 감싸는 관용은 부산의 강점"이라면서 "1 대 99 사회에서 99를 위한 정책, 넘치는 끼와 잠재된 에너지를 부산의 미래로 연결하는 아이디어 생산에 집중하겠다. 서울과 다른 부산만의 발전 방향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역대 BDI 원장 중 처음으로 연임했다. 축하한다.

▶3년이 빨리 지나갔다. 하루는 길고 일생은 짧다고 하는 데 공감한다. 사회적기업이나 1인 벤처기업, 도시재생에 청춘을 바치고 있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났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3년의 성과에 대해 자평한다면.

▶대도시를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서부산권의 연구개발특구·에코델타시티 유치와 도시재생·해양수산부 부활·부산시민공원에 정책적 뒷받침을 했다. 일자리 부족으로 젊은이들이 빠져가는 현상은 아쉽다. 어른들이 그들의 멘토가 돼야 한다. 도시발전 방향을 사람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 청년창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국으로 확산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가장 애정이 가는 분야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이다. 어릴 때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밑에서 자랐다. 그 시절 이발소가 간판만 조금 부러진 채 아직도 영업 중이다. 노후주택을 수리해주는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마을활동가들과 논의 중이다. 전국 유일의 헌책방 클러스터인 보수동 책방골목 주인들은 요즘 높은 임대료와 낮은 수익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창업이 가장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 달력을 만든 '아코아'나 저소득층을 위해 보온텐트를 개발한 '바이맘'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부산 청년들, 열심히 한다. 미래가 밝다.

-매주 발행되는 정책소식지 'BDI포커스'에 읽을거리가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일, 1주일 단위로 일을 처리한다. 길어야 3개월이다. BDI는 예산과 연구과제가 1년 단위이다. 그래서 'BDI포커스'에 이슈성과 타이밍을 가미했다. 요즘 연구원들은 현장을 자주 찾는다. '사상구 발전계획'을 수립할 때는 1박 2일 체험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 중점을 둘 분야는.

▶행복지수 높이기와 일자리다. 도시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놓고 찬반이 팽팽하다.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공연장·행사장·운동장을 갖춘 개방형 복합용도로 건설하면 어떨까. 야구장과 오페라하우스는 공존할 수 없을까. 건설비를 낮추고 세계적인 디자인을 도입하면 어떨까. 무조건 된다,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찾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 또 하나. 부산은 도시기반시설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소프트 혁신으로 성과를 창출해야 할 때다. 예를 들어 도시철도 1㎞를 건설하는 데 1000억 원이 든다. 청년창업·사회적기업·소문화공간은 1000만 원만 지원해도 활기를 띤다. 결국 창의적인 사람이 일을 만들고 성과를 낸다.

-부산시정에 대한 비판기능을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BDI는 대부분 부산시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를 수행한다. 부산시와 BDI의 생각이 다르면 막판까지 조율하고 현실적 대안을 마련한다. 비판 기능은 학계·언론·시민단체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BDI를 제외하면 부산에 민간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는 BDI 규모 이상의 싱크탱크가 수백 개 활동하고 있다. 정식 연구소가 아니더라도 연구 네트워크가 많이 생겨야 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생활을 오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은 어떻게 해야 서울을 이길 수 있나.

▶부산 떠났다가 37년 만에 내려왔다. 서울에 비해 부산의 발전 속도가 늦었다. 인구·기업·문화·의료·인프라의 격차가 큰 것도 사실이다. 부산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특화해야 한다. 해양·영화·도시재생·국제화·인디문화·해외원조 분야에선 서울을 앞설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생각이 크고 깊으며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많아야 한다. '혁신을 위해서는 첫 번째 추종자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과 이를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변화가 확산된다.


# 이언오는 누구

- 삼성그룹서 25년간 근무… 벤처육성정책 마련 주역
- 원장 취임 후 시장과 회의서 "부산 낙후… 공무원 더 뛰어야"

부산에서 태어나 삼성그룹에서 25년간 근무한 삼성맨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장(전무)을 마치고 고향으로 왔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에 파견돼 국가정보관(1급)으로 근무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이 원장은 벤처육성특별법 제정에 직접 참여해 벤처 열풍의 정책아이디어를 제공한 주역이기도 하다. 새로운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다.

부산발전연구원장 취임 직후인 2010년 7월 19일 허남식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부산시 정책회의에서 쓴소리를 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이 원장은 "30여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부산이 너무 낙후됐다. 부산 발전을 위해 공무원이 더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순간 회의장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한 분위기였다. 시장 앞에서 대놓고 직언하는 간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사단계였던 BDI 신청사 건립계획도 보류시켰다. 부산경제가 어려운데 100억 원을 들여 신청사를 지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BDI는 부산진구 양정동 상수도사업본부 건물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다.

이 원장은 원장실 옆 접견실을 없애고 부산과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BS 룸'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는 요즘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에 열심이다. 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등과 협의해 올가을 책방골목 축제 때 '헌책방에서 새책방까지'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김언호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한길사 대표)은 지난 22일 부산을 찾아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보고이자 정신사적 유산이다. 세계 유수의 책방골목을 순례하면서 보수동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토록 소중한 유산인 보수동 책방골목을 한국 독서운동이 폭발하는 진원지로 만들자"고 밝혔다.

저서로는 '21세기를 향한 한국의 국가경쟁력'(공저, 삼성경제연구소, 1994) '일본기술이 위험하다'(공역, 삼성경제연구소, 1994) '자본주의의 시스템간 경쟁'(공역, 삼성경제연구소, 1995) '선진행정의 길'(공역, 삼성경제연구소, 1996) 등이 있다.


※ 프로필

▷1954년 부산 동구 출생 ▷1973년 부산고 졸업 ▷1979년 서울대(경영학) 졸업 ▷198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4년 한국과학기술원 경영정책학과 박사 졸업 ▷1986년~1990년 삼성경제연구소 산업연구실 ▷1991~ 1993년 삼성그룹 비서실 ▷1993 ~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장 이사·상무·전무 ▷2005~2007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관(차관보급) ▷2007~2010년 삼성경제연구소 정책개발실장 전무 ▷2010년 7월~현재 부산발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