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마을에 조성된 독일마을. 급경사 지붕과 외관을 가진 독일식 주택이 이곳이 한국 속의 이국지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 파독 간호사·광부
- 2003년부터 입주
- 로젠·뮌헨하우스…
- 몇몇 집 민박 운영

- 대학생 독일어 캠프
- 한때 문전성시
- 내달 맥주축제 개최
- 민속공연 등 다채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마을은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10여년 전만해도 50여가구가 흩어져 올망졸망 터를 이루며 고기잡이와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던 곳이다. 어느날부터 키가 크고 코도 큰 노랑머리 독일 사람들과 오랫동안 현지에서 거주했던 한인들이 하나 둘씩 이사 와 살고 있다. 남해군이 이곳에다 1960대 독일로 건너갔던 교포들의 집단촌을 만들고부터다. 이른바 '독일마을'이다.

	남해 독일마을에서 지난해 개최된 맥주축제에서 참가자와 주민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건마을 어부림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한 독일마을에는 관광객이나 내방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인근의 사천이나 진주, 창원은 물론이고 서울이나 대전 등지에서 온 방문객도 적지 않다.

대구에서 왔다는 조형환(45) 씨는 "가족들과 함께 독일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보고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분들의 모습에서 독일문화를 맛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지난 10일 독일마을에는 30여 명은 됨직한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거리를 걸어며 주택과 정원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연인이나 친구사이로 보이는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거나 독일식 주택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이국의 풍경을 만끽했다.

지난 2000년부터 조성된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나 광부들이 우리나라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한 곳이니 만큼 입주민 모두가 노령이다. 조용하고 쾌적한 마을분위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활에 간섭을 받는 자체를 꺼려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보내오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곳 주민들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민박을 시작하면서 마을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었다.

2003년 입주가 시작된 뒤 몇몇 가구들이 민박업을 시작했다. 남해군도 민박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했다. 주민들은 고유의 주소가 있지만 '로젠하우스' '뮌헨하우스' '구텐베르그' 등 독일식 집 이름을 지어 민박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전국의 독일어 관련 대학생을 상대로 캠프를 운영했다. 한 번에 50명가량이 4주동안 33채의 집에서 생활했다. 집주인의 유창한 독일어를 듣고 대화하며 독일어를 익혀 나가는 방식이었다.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독일어를 배우기 때문에 학생들의 독일어 실력은 1년동안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는것보다 낫다는 평이 나왔다. 이 때문에 전국 각지의 독일어 전공 대학생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으나 경기 침체와 독일어의 인기가 사그러들면서 캠프는 최근 문을 닫았다.

독일마을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9년 '독일마을 맥주축제'를 열고부터다. 30년을 넘게 독일에서 살면서 정통 맥주의 매력에 빠졌던 이들은 독일식 소시지까지 준비해 행사를 열였다.

첫해에는 1000명분을 준비했다. '시골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찾겠느냐'며 '맥주와 음식이 남으면 어떡할까'를 걱정했다. 그런데 1만여 명이 몰려 오후 2시쯤 되자 맥주와 소시지가 모두 떨어져 참가자들에게 비난(?)을 들었다. 지난해에도 맥주와 소시지 6000개를 준비했으나 오후 5시쯤되니 물량이 바닥나 손님들에게 사과를 해야했다.

오는 10월 4, 5일 이틀동안 열리는 올해 축제에는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독일의 '파울러너'사가 직접 참여해 생맥주를 무제한 공급하고, 소시지는 1만1000개를 준비한다. 값은 아주 저렴하게 책정했다.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많은 관광객이 참가해 축제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이번 행사에는 독일식 퍼레이드도 마련했다. 오크통을 실은 마차가 선두에서 행진하며 장미꽃을 나눠준다. 그 뒤에는 주민들이 독일 전통 의상을 입고 행진하며 축제분위기를 돋운다. 첫날에는 맥주빨리마시기, 팔씨름 등의 행사와 부산외대 독일어과 학생들의 독일민속공연, 룩스앙상블의 클래식공연 등이 펼쳐진다. 다음날에는 주민환영의 노래, 힙합공연, 세시봉의 통기타 공연, 옥토버 가면 댄스파티 등이 열린다.

독일마을 사람들이 행사를 더 기다리는 것은 올해가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이자 독일과의 수교 13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 "독일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 만들 것"

■ 석숙자 맥주축제위원장

"20㎏짜리 가방 하나를 들고 이역만리 독일공항에 내리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너무 막막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저 인솔자에게 모든것을 내맡기는 수 밖에 없었지요."

지난 1973년 마지막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갔던 석숙자(여·65·사진) 씨. 그는 요즘 독일마을 맥주축제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대를 꾸미고 행사를 진행하고 축제기간에 쓸 물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무엇보다도 독일마을 전 주민들이 축제 행사에 고루 참가하고 행사에 따른 부담을 나눌 수 있도록 역할 안배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첫 행사에서부터 지난해까지는 준비한 음식이 모자랄 정도로 방문객이 많아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혹시 올해는 비가 오거나, 다른 이유로 방문객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석 씨는 밥맛도 없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독일마을 내에서도 '똑순이'다. 의사표현이 분명하고 아이디어도 많이 낸다. 지금은 없어진 대학생들의 독일어캠프도 그가 제안했고, 맥주축제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석 씨는 "지금까지의 독일마을은 파독 교포들이 노후를 보내는 장소로만 여겼겠지만 이제는 독일의 문화를 우리나라에 전달하고 우리 국민들이 독일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며 "올 행사를 독일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명품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빨간색 지붕 이국적 풍경, 독일 국적 33가구 거주…獨문화체험센터 연내 개장

■ 독일마을

남해군 독일마을은 빨간색 지붕에 하얀색의 벽으로 지어진 전형적인 독일풍 주택촌이다. 남해군이 지난 2000년 독일의 베를린과 뮌헨 등에서 교포들을 대상으로 4차례의 설명회를 개최한 뒤 조성했다.

몇몇 교포들이 독일을 방문한 군수에게 "노후를 고국에서 보내고 싶으나 마땅히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데 착안해 "따뜻한 남해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드릴테니 만년을 고국에서 보내시라"고 제안해 성사가 됐다. 독일마을은 자치단체가 외국에 사는 교민들에게 집단 이주촌을 만들어 준 최초의 사례이자 가장 성공적인 본보기로 꼽힌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우리 교포에게 안식처를 제공한 셈이다.

남해군은 9만여 ㎡의 부지를 조성하고 도로와 상하수도, 전기, 통신시설을 제공했다. 교포들은 집만 지어 살면 되도록 했다. 53채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사업비은 공공시설에만 76억 원이 들어갔다.

2001년부터 분양에 들어가 2006년까지 모두 27가구가 입주했다. 지금은 33가구가 살고 있다. 현재 4가구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주로 독일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한국인들이 살지만 독일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사는 가구도 제법 된다. 이들의 국적은 모두 독일이다.

올 연말에는 마을옆 7000여 ㎡의 부지에 28억여 원을 들인 독일문화체험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독일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시설이다. 지하 1층에는 파독 당시의 광부와 간호사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실과 기념관도 마련된다.

독일마을은 특색있는 독일식 건축양식에다 인접한 원예예술촌 등과 시너지효과를 거둬 연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