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본부 항공안전 점검

- 비행불가 규정 강화

서울 강남구 삼성동 38층짜리 아이파크 아파트 102동 24∼26층에 민간 헬리콥터가 지난 16일 오전 8시54분께 충돌해 추락했다. 국내에서 건물에 헬기가 충돌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헬기는 충돌 후 아파트 화단으로 추락했고 조종사 박인규(58), 부조종사 고종진(37) 씨 등 2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아파트 21층에서 27층까지 창문이 깨지고 외벽이 상당 부분 부서졌다. 헬기는 꼬리날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모두 파손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사고 헬기 기종은 8인승 시콜스키 S-76 C++로 LG전자 소속 민간헬기다. 

항공당국은 사고 헬기가 이날 오전 8시46분 김포공항을 이륙, 한강을 따라 정상경로로 비행하면서 LG 임직원을 태우려고 잠실헬기장으로 이동하다 착륙을 앞두고 경로를 벗어나 아파트를 들이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해무·유리외벽·강풍 '3대 지뢰'

이날 사고는 짙은 안개로 인한 시계(視界) 불량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면서 부산의 고층 건물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30층 이상 고층 건물이 밀집한 마린시티와 달맞이고개 등 해운대 지역은 해무와 강풍이 잦아 이번 사고가 발생한 한강변보다 헬기 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돼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실제 사고 당시 아이파크 아파트에는 불빛을 깜빡이는 경광등이 켜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조종사들이 안개가 짙어 알아보지 못했거나 알게 된 시점에서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사고가 난 아파트 외벽이 대부분 유리로 만들어져 조종사가 착시 현상을 일으켰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파트 외벽 상당 부분이 유리로 돼 있는데, 여기에 한강과 같은 주변 풍광이 비치면 하늘에서 볼 때 물 색깔과 비슷해서 물 위를 나는 듯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은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만 25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데다 달맞이고개 등 고지대에 들어선 30층 이상 건물을 고려하면 부산 곳곳에는 헬기 운항의 위험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건물의 외벽도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 해안가에 집중해 있어 해무가 잦은 여름과 초가을에는 조종사가 착시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욱 높다. 여기에다 부산은 강풍이란 위험 요소가 더 있다. 지난 4월 3일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 내 초고층아파트인 해운대아이파크에서 실시한 소방훈련 당시 헬기 구조를 시도했지만 강한 바람으로 착륙하지 못하고 철수할 정도였다.

■도심 운항 불가피… 규정 강화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산불, 건물 화재, 응급환자 구조 등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헬기의 도심 운항은 피할 수 없다. 헬기 운항 규칙에는 가능한 한 도시 속을 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산을 둘러싸고 도시가 형성된 부산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면 이런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기는 어렵다. 더욱이 현재 건립이 추진 중인 해운대관광리조트, 용호만 매립지 등에 초고층 건물이 모두 들어서면 헬기 운항에 새로운 위험요소가 더 생기게 된다. 

김해공항에 계류 중인 민간 헬기가 주로 다니는 항로인 부산∼거제 구간에도 몇 년 전부터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어 헬기 운항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시 소방안전본부는 항공구조구급대 항공운항반을 중심으로 지역 196곳의 11층 이상 건물에 대한 항공안전대책 마련에 나섰다. 본부는 우선 소방·민간·해양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7대의 헬기 운항 관계자를 대상으로 사고 사례 전파를 통한 특별안전교육과 함께 헬기 특별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일선 기장들에게 풍속 15m/s 이상, 수평 시정(조종사가 수평으로 보이는 거리) 주간 1.5㎞ 이하(야간 5㎞ 이하), 구름 높이 주간 150m 이하(야간 500m 이하)일 때 임무수행 불가 규정을 준수하도록 명령 체계를 강화했다. 이와 함께 고층건물의 소규모 헬기 이착륙장의 착륙 여건 및 장애물 설치 여부 등도 점검한다. 

항공구조구급대 김현철 기장은 "이번 사고는 수평시정 등 조종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행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 안전수칙을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