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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49> 청년 고수 이치종

섬소년, 십수년째 북채 잡고 고법(鼓法) 보존 외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1-05 20:08:33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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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이치종 씨가 '얼씨구' 추임새로 소리를 받쳐주면서 소리북 장단을 맞추고 있다.
- 풍물가락 반해 배우기 시작
- 인간문화재 김청만 선생 등
- 여러 스승 찾아다니며 사사
- 2010년 판소리고법 전수자
- 두 아들도 아쟁·대금 전공

고수(鼓手)는 전통음악을 연주할 때 북(鼓)을 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서 흔히 '북잽이'라고도 한다. 판소리나 산조 연주에서 장단을 치는 사람으로 산조에는 주로 장구를 쓰고, 판소리에는 소리북을 사용한다. 그러나 보통 고수라 하면 판소리에서 소리북을 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 했으니 소리 가락도 구성져야 하지만 북 장단이 우선이란 말이다. 소리꾼이 아무리 창을 잘해도 북장단 한 번 삐어(박자가 틀리거나 빼먹는 것) 버리면 놀음판(공연장)은 잡쳐버리고 만다. 이렇듯 놀음판을 좌우하는 고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명창이고수' 대접만 받아왔다.

동래학춤 장구재비로 고법(鼓法) 공부에 빠져 있는 이치종(45) 씨를 찾아 김해의 소리공부방을 찾았다. 출입문 밖으로 이 씨의 추임새와 함께 벌써 10년째 장구를 배우고 있는 박숙자(58·밀양백중놀이 이수자) 씨의 굿거리장단이 흥겹게 들려온다. 무릇 고수란 북과 장구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소년 명창은 있을 수 있지만 소년 명고는 있을 수 없다' 했으니 고수의 북소리에서 곰삭은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예고하고 있음이다.

이 씨는 전남 여수에서 쾌속선으로 두 시간 넘게 가야 도착하는 남면 연도에서 태어났다. 1984년 초등학교 졸업 후 부산에서 취직한 형으로부터 "될 놈은 육지 큰물에서 놀아야 해" 소리를 듣고 난생처음 부산 땅을 밟는다. 전기일부터 배워 일용직 막일 등 손에 잡히는 대로 4~5년간 일했다. 그러면서 방송통신고에 등록했다. 일따라 군산, 남원, 서울 등지로 다니다가 울산에서 양순조의 풍물패를 만나면서 눈이 화등잔만 하게 뜨여졌다. 풍물 가락이야 고향에서 명절 때마다 들어왔었지만 맛과 태가 달랐다. 갖추어진 음악 세계를 처음 본 것이다. 뜸들일 것 없이 사물놀이를 배웠다. 그리고 필봉농악 상쇠 양순조 씨의 고향 필봉에 가서 좌도필봉농악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일도 내팽개치고 양 씨에게서 꽹과리와 장구에 엎어져 남원과 울산을 오가며 사물놀이패 활동을 하게 된다. 풍물에 인생을 건 이 씨는 말리는 형과 부모님 눈을 피해 김해시 생림으로 숨어들었다. 스물한두 살 즈음이다. 문현동 자취방 인근에 있던 보육원 신양원이 새 둥지를 튼 생림에서 원생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쳤다. 신양원 사물놀이가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유명세를 타면서 부산에서도 국악인이 찾아오고 신태형(부산민속보존회) 선생도 이즈음 만났다.

1995년 전통타악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부산진구청 이웃에 '부산놀이마당 꼭두쇠'를 연다. 좌도필봉농악 공연을 위해 남원으로 오르내리면서 사물놀이를 깊이 있게 공부했다. 1998년 신양원에 봉사하러 온 손혜정(춤) 씨를 만나 양가의 축복 속에 수로왕릉 공원에서 전통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꼭두쇠를 김해 외동으로 옮긴다.

2000년 수로왕릉 정문 앞에 '이치종 타악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부터 서울로 가서 고법 인간문화재 김청만 선생에게서 본격적으로 고법 공부를 배우기 시작한다. 소리북과 장구 장단을 배웠다. 소리를 밀고 당기고, 맺고 푸는 선율의 기본에 따라 장단에 변화를 주어 소리꾼과 호흡이 맞아야 소리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사설의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연주하는 변주법도 익혔다. '소리가 살(肉)이라면 장단을 뼈(骨)'라 했으니 소리판을 살려내는 데는 고수의 능력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6개월에 한 번씩 일 년에 두 차례 충남 논산 등에서 선생을 모시고 집중 공부를 한다. 벌써 10년간 20회가 되었다. 그리고 민속의 명인들에게서 민속 장구의 틀도 익혔다.

양순용, 양순조 형제(사망)에게서 사물놀이를 배웠고, 동래 유금순 선생에게서 권번 가락을 익혔다. 2007년에는 아쟁산조 예능보유자 박대성 선생으로부터 즉흥연주의 변화무쌍한 산조 가락을 배웠다. 그만 오라고 할 때까지 배웠다. 1997년 부산민속보존회에 입회해 타악을 맡았다. 부산·진해·창원 등지에서 열리는 전국국악경연에 고수로 초빙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판소리 완창무대에도 네 차례나 고수로 초빙되었다. 전통음악의 다른 장르와는 달리 판소리 장단의 법도는 매우 엄격하고 절도가 요구되므로 고수는 많은 수련 과정을 거치고 판소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 소리 속을 소리꾼보다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리할 때는 소리꾼 앞에 약간 비켜서 북을 앞에 놓고 앉아 오른편 발목을 왼편 무릎 앞으로 책상다리한다. 그리고 엄지를 북의 왼편 가죽꼭대기 모서리에 얹어놓고 손바닥을 가지런히 모아 왼편 북 가죽을 친다. 겹가락을 칠 경우 외에는 왼손을 결코 떼어서는 안 된다. 오른손에 쥔 북채는 북채 끝에서 한 뼘쯤 되는 곳을 감아쥔다.

2007년 전국국악경연대회(여수)에서 고수 부문 대상을 받았다. 2009년 김해한옥체험관에서 고법 개인발표회를 열었고, 2010년 (사)일통고법보존회 경남지회장을 맡으면서 판소리고법(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전수자가 된다(고법은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으로 지정받았다).

작년 9월에는 '장단, 그 소리를 품다' 이치종 타악발표회를 김해문화의 전당(누리홀)에서 박대성, 김청만 명인들을 모시고 성황리에 마쳤다.

두 아들도 모두 국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큰아들은 아쟁을 전공하고, 작은 애는 국립국악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하고 있는 명실공히 전통예술인 가족이다. 동행한 김영민 선생이 풀어내는 '쑥대머리'에 북 장단을 메긴다. 호쾌장대한 북소리가 태산을 집어삼키는데 얼씨구 추임새가 운무 속에서 날아와 소리를 받쳐준다.

땅끝 섬 소년이 뭍에 올라 사물놀이에 반해 고법 예능보유자에게 소리북과 장구 타법을 사사하면서 먼눈팔지 않고 고수 외길로 간다. 외길수업이야 십수 년에 불과하지만 부산의 명인들에게서 민속 장구를 터득하면서 젊은 고수의 역할이 새삼 돋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의 010-2308-7324 / 부산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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