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가 최근 기초의회 업무추진비 집행 기준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구체성이 떨어져 모호한 지출이 남발될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한 기초의회 본회의장 모습. 국제신문DB

- 행자부 새 기준 구체적 명시 불구
- 명확한 자격·제한 없어 논란 가중
- 오히려 사적 용도 사용 여지 남겨

- 동구의회 지출 공개 추진 했지만
- 차일피일 미루다 조례 입법 무산
- 자체 기관 내부지침 명문화 절실

- 미국·유럽 등에선 관련 항목 없어
- 날짜·액수 등 집행내용 매월 공개
- 국내 정보공개 시스템 신뢰 낮아

기초의회 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행정자치부가 최근 업무추진비 집행 기준을 마련해 각 지자체와 지방의회에 내려보냈다. 하지만 이 규정도 구체성이 떨어져 모호한 지출이 남발될 것으로 우려된다.

■새 업무추진비 집행규칙 신뢰 의문

지난달 개정한 행자부의 지자체 업무추진비 규칙에 따르면 기초의원은 ▷이재민 및 불우소외계층 격려·지원 ▷각종 간담회·회의·행사·교육 ▷의정활동 및 지역 내 홍보 ▷소속 의원, 상근 직원에 대한 격려 및 지원 ▷직무수행과 관련된 통상경비 등 9개 분야 31개 항목에만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기초의회 소속 상근 직원에 대해 업무추진비로 축·부의금을 낼 수 있지만 이때에도 의장 명의로만 가능하다. 행자부는 지방의원의 업무추진비 집행 대상과 사용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것이 개정 내용의 핵심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기초의회 관계자들은 행자부 기준 자체가 두루뭉술해 논란의 불씨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사용 용도·대상 등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지인 운영 식당에 식대 몰아주기·동료의원과 공무원에 대한 격려품 지급 등 기존 관행을 바로잡기도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체육 활동 유공자 등에 대한 격려 및 지원 기준을 보면 '올림픽대회, 월드컵대회,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 전국체육대회, 시·도 체육대회에 선수로 출전하는 경우'로 정했다.

하지만 '해당 지방의회 의원 중 공로가 많은 지방의원에 대한 격려품 지급' '해당 지방의회 소속 상근직원에게 업무추진에 대한 격려를 위한 식사 제공'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격이나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한 기초의회 직원은 "무엇을 기초의원의 '공로'로 치고 어떤 경우에 상근 직원을 '격려'하며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지는 안 나와 있다"며 "기존에 업무추진비 사용 기준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번 개정안에는 해당 지방의회가 관할 지역의 현안 업무에 대해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하려고 개최하는 회의 또는 간담회 참석자에게 음식이나 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명시해 기초의원들이 사적으로 쓸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초 의회 자정노력 미적

이 때문에 기초의회 자체적으로 명문화된 내부 지침을 마련해 스스로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부산 동구의회는 지난해 2월 부산시 지자체 중 처음으로 '업무추진비 공개 및 지출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무산됐다. 당시 예고했던 조례안에 따르면 구청장, 부구청장, 4급 이상 공무원, 기초의원이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분기마다 한 번씩 구보나 구청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업무추진비에 대한 공개청구가 있으면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지출결의서 및 지급 결의서, 현금출납부 및 내부결재 서류, 관련 견적서, 영수증, 신용카드 전표 등 증빙서류 등을 알린다. 세부적인 지출 기준도 따로 마련했다.

진일보된 조례안이었지만 동료의원들이 차일피일 미루다 회기를 놓쳐 결국 조례 입법은 백지화됐다. 당시 조례 입법을 발의했던 강춘남 전 동구의원은 "총무위원장의 법적 검토까지 마쳤는데 일부 의원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보류시켰다"고 말했다.

반면 해운대·사하구의회 등은 '의원이나 소속 상근 직원에 대한 조의금, 축의금을 업무추진비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등의 자체 규정을 만들어 이를 어길 시에는 환수·징계 한다.

■정보공개 자료도 신뢰성 의문

미국, 유럽 등에서는 업무추진비와 비슷한 예산 항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업무추진비 사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접대비와 격려비 등은 이미 다른 사업 예산이나 급여 등의 형태로 별도로 지급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업무추진비와 비슷한 '교제비'라는 예산 항목을 따로 두고 있지만, 정보공개 조례를 만들어 업무추진비 공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교제비를 쓴 사람과 날짜, 액수 그리고 대상 등에 대해 월별로 집행 내용을 사전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민이 알 권리 차원에서 이 같은 정보를 알려면 정보공개청구 시스템을 통해야 하지만 충분히 신뢰할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부산 남구의회사무국은 19일 본지의 '아내 명의의 업소에 각종 행사 몰아주기(19일 자 3면 보도)' 기사와 관련, 남구의회 부의장이 지난 1월 9일 동료 의원 2명과 한 낙지집에서 업무추진비로 42만 원을 쓰고, 남구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2월 24일 한 돈가스집에서 동료 의원 2명과 업무추진비로 16만5000원을 결제했다고 정부 정보공개 청구 시스템을 통해 공개한 자료는 담당 공무원의 전산입력 오류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됐다고 알려왔다. 실제 남구의회 부의장과 운영위원장은 각각 4만2000원, 1만6500원을 사용했다.

담당 직원과 결재권자가 정보공개를 통해 알린 업무추진비 사용액과 내부전산망인 새올행정시스템에 집계된 실제 사용액만 비교해도 이 같은 실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달 사상구의회를 상대로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청구를 했던 김호겸(34) 씨는 "구의회 직원이 업무가 과중하다며 신용카드 영수증 사본을 정보 공개 청구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며 "한 번만 전자파일로 만들어 저장해두면 될 일인데 왜 이 같은 절차를 생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받은 정보가 100% 정확한지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일시·장소·인원수 증빙 서류에 명시, 위반땐 환수 조치"

■ 해운대구의회 건전화 사례

- 2013년 지역 첫 자체 규칙 제정

부산 해운대구의회는 부산지역 16개 구·군 의회 가운데 가장 먼저 2013년 12월 '업무추진비 사용 및 공개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업무추진비에 관한 규칙에는 ▷신용카드 사용 ▷정당 활동 및 개인 용도로 사용 금지 ▷접대비 4만 원 이하 ▷심야시간 사용 금지 ▷술집 등 유흥업소 사용금지 ▷증빙서류에 일시, 장소, 인원수 명시 ▷건당 50만 원 이상일 경우 상대방의 소속과 주소 및 성명 기재 ▷의원이나 직원 대상 조의금 및 축의금 사용 금지 ▷동호회 등 회비 명목 사용 금지 등이 상세하게 담겼다. 이는 분기당 1회 이상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하며, 어길 경우 업무추진비를 환수하거나 업무추진비 사용을 금지할 수도 있다.

규칙이 추진된 이유는 자치단체 의원의 무분별한 업무추진비 사용이 해운대구의회에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심윤정(새정치민주연합) 해운대구의원은 "심할 경우 경북 경주시의 한 술집에서 업무추진비가 사용되는 등 과한 행태가 발각돼 2013년 구의원 사이에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업무추진비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고 한 달이 지나 해운대구의회는 같은 취지의 조례를 제정했다. 해운대구의회 의원 윤리강령 및 행동강령 조례다. 영리 행위 금지 등을 규정해 자발적으로 구의원의 위상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이문환(새누리당) 해운대구의회 의장은 "업무추진비는 사실상 사용하기 나름이어서 이를 규제할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며 "해운대구의원 사이에 자성의 목소리 속에서 규칙과 조례를 제정했고, 이후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이 명확히 공개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사하구의회도 해운대구에 이어 지난해 자체적으로 업무추진비 사용 규칙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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