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 위주 구조조정 강행 땐
- 일본조선 몰락 전철 밟을 우려

경남 거제의 한 대형조선소에서 안전업무를 맡았던 김모(58) 부장은 최근 희망퇴직을 하고 중국의 한 조선소로 자리를 옮겼다. 또 조선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용접 기능사 정모(45) 씨는 원청의 단가 후려치기에 시달린 회사가 임금을 깎자 급여가 더 많은 육상의 산업 현장으로 이직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업계 숙련 인력이 유출될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무작정 인력 감축에 매달리다가는 현장의 숙련된 인력이 계속 빠져나갈 경우 조선업 활황기가 다시 오더라도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구조조정 자구안으로 2018년 말까지 3년간 경영 상황과 연계해 전체 인력의 30~40%를 줄일 계획이다. 회사 정직원이 1만3000명인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3년간 3900~5200명 감축이 예상된다. 삼성중공업은 연말까지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만3000명의 직원을 오는 2019년까지 1만 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지난해 말 400여 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데 이어 올해 말까지 350명을 더 줄일 방침이다. 거제로 본사를 이전하는 방침에 따라 서울사무소에 있던 직원 중 우선 280명을 거제로 옮기는 과정에서 70명은 스스로 퇴사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희망퇴직한 직원 중 일부가 외국 조선소로 이직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되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사 협력업체의 인력 유출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달부터 원청 측의 단가 후려치기로 조선사 협력업체의 경영난이 가속화돼 급여가 삭감되자 기능공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이들은 급여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등 육상의 산업 현장으로 앞다퉈 이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협력업체에서는 정작 일손이 더 필요한데 기능공을 구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미 거제지역 협력업체 10여 개사가 폐업 신고를 했고 앞으로도 폐업 신고는 잇따를 전망이다.

급기야 협력업체 대표와 현장소장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TF가 중국 현지에서 협력업체로 근무할 수 있을지 타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이들은 20여 일째 중국에 머물면서 인건비와 근무조건 등을 놓고 현지 조선소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에서는 숙련된 기술력이 생명인 이 분야에서 인력 감축 위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하면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일본은 조선업체 간 합병 등으로 구조조정을 한 결과 기술 인력이 크게 줄어 한국에 조선업 패권을 넘겨준 실책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대 조선·해양플랜트 글로벌핵심연구센터(GCRC) 조진만 연구교수는 "인력 감축이 가속화되면 고부가가치 선박의 설계 인력까지 외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숙련된 인력을 계속 붙잡아둘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