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 사고 비극 막기 위해
- 1957년 호주 화학자가 개발
- 차량용도 보급되며 대중화돼
- 교통사고 등 원인규명에 활용
- 기록된 정보 진실 알려주지만
- 개인정보 악용 우려 생각해봐야

지난달 31일 발생한 해운대 7중 교통사고는 3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를 낸 비극적인 사고였다. 특히 이 사건이 더욱 주목받은 것은 지병으로 인한 과실 사고라는 운전자의 진술과 달리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 발생한 고의적인 사고였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운전자의 진술로만 묻혀버릴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던 데는 차량용 블랙박스의 공헌이 컸다. 사고현장이 고스란히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은 운전자의 진술보다 훨씬 강력한 신빙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로 위의 감시자'라 불리는 블랙박스 덕분에 최근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해결되고 있다. 오늘은 블랙박스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보자.
■생명 지키는 블랙박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블랙박스'라는 단어는 비행기 사고 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매체 정도로만 인식됐었다. 하지만 차량용 블랙박스가 보급되면서 교통사고 및 도로교통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영역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장비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각 시·도에서는 택시와 같은 사업용 차량에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며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블랙박스와 같은 영상매체를 근거로 운전자 및 동승자들의 안전띠 착용 여부를 판별해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블랙박스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최초의 블랙박스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비행기 사고의 비극에서 등장하게 됐다. 1952년 5월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는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인 '드 하빌랜드 코멧' 취항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런던에서 요하네스버그 구간을 23시간 만에 고공비행하는 신기술을 탑재한 제트기는 단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단기간에 수만 명의 탑승객을 기록하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취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거푸 공중 폭발 및 추락사고를 겪게 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공비행에 따른 금속의 수축과 압력이 기체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원인을 규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이후 1957년 호주의 항공기 연료 화학자인 데이비드 워런이 최초로 '블랙박스'라는 기술을 개발했고 비로소 조종석에서 항공기의 고도 및 속도를 분석해 기록하고 교신 내용과 조종석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기체에 장착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비행기 사고로 부친을 잃은 아픈 기억이 있었던 워런은 잇따른 비행기 추락사고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블랙박스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최초의 블랙박스는 테이프에 정보를 기록하고, 기록시간도 4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블랙박스는 400시간 이상의 방대한 정보 기록이 가능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항공기뿐 아니라 일반 차량에도 장착하기 시작하면서 블랙박스는 하늘 위에서 지상으로 그 활동반경을 넓히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2000년도부터 미국과 일본 등에서 사업용 차량에 블랙박스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유럽은 2006년부터 모든 사업용 차량에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버스와 택시 등 사업용 차량뿐만 아니라 일반 차량에도 블랙박스 장착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가 모든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2014년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실종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전파 탐색이 어려운 심해에 가라앉거나 배터리가 소진되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블랙박스라 하더라도 제 역할을 하기 힘들어진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블랙박스에 기록된 정보가 인공위성을 통해 지상으로 전송되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 도입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은 위치 및 사생활에 대한 모든 정보가 노출되는 것이기에, 보안 및 개인정보 침해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일으킨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처럼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개발된 블랙박스는 그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안전과 사생활의 자유라는 양날의 검을 가진 블랙박스. 기술의 진화 방향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박선미·사회자본연구소 대표

김정덕·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NIE강사


# 생각해 볼 점

우리 집 차량에도 장착된 블랙박스는 사실 오래전부터 활용돼왔는데요. 블랙박스의 역사와 기술변화를 통해 그 기록의 변화과정을 함께 이야기해볼까요?

1. 최초의 블랙박스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2. 블랙박스의 기술은 어떻게 진화해왔나요?

3. 블랙박스가 대중화되면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