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렌털계약 취소엔 28만 원 요구
- 소비자 "고객에 책임전가" 분통
필터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공기청정기의 렌털 계약을 해지해 달라는 소비자의 요구에 해당 업체들은 인체 유해성 여부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되레 위약금을 요구해 원성을 사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 사는 김모(55) 씨는 지난 7월 말 공기청정기 항균필터에서 독성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린(OIT)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올해 봄 황사 먼지를 피하려고 쿠쿠전자에서 3년 약정으로 빌린 공기청정기가 그 목록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LG, 위니아, 청호나이스, 프렉코, 쿠쿠 등 6개 업체의 일부 공기청정기 필터에서 OIT가 검출됐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쿠쿠전자는 필터를 무상 교체해주겠다고 했지만, 김 씨는 불안한 마음에 더는 공공청정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최근 계약 해지를 업체에 요구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위약금과 철거비 등 약 28만 원을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2일 "업체가 결함 있는 제품을 만들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데 오히려 내가 잘못해 위약금을 무는 것처럼 됐다"며 "유해물질에 관한 불안감과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부 전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쿠쿠전자는 "OIT가 검출된 건 맞지만 인체 유해성 여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조사가 필요하다"며 "공기청정기 자체 문제는 아니므로 렌털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에는 필터 OIT 검출 제품의 반품과 환급 문의나 공기청정기 대여 후 항균필터 OIT 검출로 인한 계약해지 및 위약금 문제에 관한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공기청정기 관련 상담이 지난 6월 472건에서 7월 650건으로 37.7% 늘어난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OIT가 검출된 업체들은 필터 이외에는 무상 교체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소비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해 유해물질에 관한 소비자 불안이 커지는데도 정부의 대처가 미온적이어서 이런 갈등을 유발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경부는 "공기청정기 필터에 대해서만 검사했기 때문에 제품 전체의 교체나 회수에 관한 지침을 내리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들은 독성물질이 있지만 소량이라 큰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정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고, 정부가 근본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업체의 편에서 조사 결과를 축소하려 한다며 불신감을 보이고 있다.
부산여성소비자연합 조정희 대표는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한 데 대해 부품 교체로 끝낼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소비자의 불안을 명쾌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