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새도래지 근접·가금류 최다
- 발생지인 기장보다 압박감 커

- 축사 출입 전 차량 소독부터
- 의심지 매일 소독약 4000ℓ뿌려
- 공무원, 컨테이너 초소서 근무
- 24시간 3교대 피로 누적 심각

- "이달 말 철새 올텐데…" 초긴장

3000만 마리. 2일까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살처분된 가금류이다. 국내 가금류 사육규모(1억6525만 마리)의 18%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날 만난 부산 강서구 이상성 농산유통계장도 한숨부터 쉬었다. '뚫려선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이 더 커진 탓이다.

2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저1동 중리2구마을에 설치된 거점소독시설에서 박호걸(오른쪽) 기자가 축산농가 출입 트럭에 소독액을 뿌리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그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 장관 주재로 열리는 시·도 부단체장 영상회의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장관은 매일 'AI 미발생 지역을 철저히 관리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이미 AI가 발생한 부산 기장군보다 심리적 압박이 심해요."

강서구의 사육 가금류는 8만 마리로 부산에서 가장 많다. 낙동강 철새도래지와도 가까워 AI가 발생하면 24시간 비상근무에 돌입한다. "AI로 닭이 죽어 나가는 걸 볼 때마다 피눈물이 납니다. 달걀 수급도 어려워지면 가격이 치솟아 사람도 살기 힘들어져요."

거점소독시설이 있는 강서구 대저1동 중리2구마을로 향했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김영호(59) 씨와 이한우(60) 씨의 안내를 받아 컨테이너 초소로 들어갔다. 보통 거점소독시설에는 6명이 2인 1조로 근무한다. 매일 8시간 3교대로 24시간 운영된다.

초소에서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었다. 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쓰자 안경에 김이 서렸다. 트럭 한 대가 초소 앞에 멈췄다. "운전자는 하차해서 신고필증을 작성해 주세요." 이 씨가 운전자를 초소로 데리고 들어갔다. 기자는 김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독기를 들었다. 모터를 작동시키고 밸브를 열자 소독액이 하얀 거품을 내며 쏟아져 나왔다. "AI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요? 구석구석 단디 하이소!" 김 씨의 불호령에 트럭 바퀴에 쉴 새 없이 소독액을 뿜었다.

부산 강서구 도로를 소독하는 군부대 트럭. 박호걸 기자

트럭 기사가 신고필증을 들고나오자 김 씨는 그의 발을 소독하게 했다. "알지요? 구석구석!" 기자는 이동용 분사기로 운전자의 신발은 물론 발 밑창까지 소독했다. 구석구석!

오후에는 이동 소독차에 올랐다. 강서구는 철새 분변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강변이나 축사를 방역하기 위해 매일 4000ℓ의 소독약을 뿌린다. 일주일 전부터는 군까지 동원됐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매일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화생방용 제독차에 소독액을 싣고 다니며 도로를 소독한다. 기자가 탄 소독차는 낙동강 하구의 평강수문에서 멈췄다. 개천에 철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갈대밭을 향해 소독액을 분사했다.

강서구 농산과 남인식 주무관은 "AI가 발생한 축사는 2주가량 '감금' 상태가 됩니다. 사람은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물이나 식량도 공무원이 가져다줘야 하죠. '뚫리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막고는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직 고병원성 AI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가창오리가 절반밖에 안 온 상황입니다. 이달 말까지 모두 날아들어 AI를 옮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AI 의심 신고가 줄어들고 있다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남 주무관도 고단한 듯 얼굴이 핼쑥했다. 지난해 12월 27일 AI 방역에 동원됐던 경북 성주군 농정과 공무원 정모(40)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흘 뒤인 30일에는 축산식품과장 정모(57) 씨가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닭도 힘들지만 사람도 힘든 겨울이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